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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7일 금요일

추억강간 -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2018년작,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크리스 프랫,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주연)


쥬라기 월드에서 정말 실망했기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지금 보니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간혹 다른 리뷰에서 보면 화산폭발 이후 대저택으로 무대가 옮겨지는 시점에서 맥이 한 번 끊기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별로. 편집 자체가 영화 내내 균일하게 짧은 호흡을 유지해서 딱히 그런 문제를 느끼지는 못했다.

영화가 재미없고 산만한 이유를 나는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위에도 언급한 짧은 호흡이다. 지루함을 없애려는 수였겠지만, 덕분에 영화 내에서 설명되어야 했던 수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전개가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이를테면 주인공 일행을 속이고 폭발하는 섬에서 구해낸 공룡들을 경매에 부쳐 버리는데, 경매의 목적성이 단순히 악독한 부자들의 돈놀음인지, 전쟁광들의 공룡 무기화 전략인지 워낙 설명이 부실하다 보니 막상 그 장면이 되면 실소가 터져버린다. 이자벨라 서먼이 연기한 꼬맹이와 공룡의 공통점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엄청나게 부실해서, 이자벨라가 작중 현세의 공룡들에게 공감하고 결말부에서 일을 벌이는 부분이 관객에게 아무런 카타르시스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둘째는 통일되지 않은 주제의식이다. 가장 걸작으로 기억되는 <쥬라기 공원> 1편을 보자.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생명체를 제어할 수 있는가'의 질문을 가지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룹과 회의적으로 보는 그룹이 정확히 나눠지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의 진행을 바라보며 관객과 함께 사고관을 확립하는 샘 닐의 캐릭터가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 주제를 해치는 다른 질문은 전혀 없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죽이려 들지도 않고, 공룡을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다니 동물의 권리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해괴한,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충분히 있을 법한 다른 윤리적 갈등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폴른 킹덤>은 어떤가. 누군 공룡을 병기로 쓴다고 게거품을 무는 중이고, 누군 팔아서 돈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으며, 누군 공룡도 만들었는데 다른 괴물도 만들자고 빼액거리고, 누군 자기와 공룡은 본질적으로 같으니 까짓거 사람사는곳에 공룡 몇마리 풀어놔도 별 상관 없댄다. 그래, 전부 생각해볼만한 문제긴 하지. 근데 관객은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외에도 온갖 작위적인 설정부터 오마주의 탈을 쓰고 전작의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이한 연출 등 깔 게 수없이 많다만, 위의 두 가지만으로도 영화를 쓰레기라고 못박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래도 12억 달러씩이나 쳐벌어먹은 대형 프랜차이즈니까 또 찍겠지. 내 추억 속의 걸작이 돈지랄 생쇼에 벌써 4번째 강간당하는 중이다. 어릴 적 좋아했던 여배우가 나이들어 추한 모습으로 싸구려 포르노에 나와 매니큐어에 비즈까지 떡칠한, 니코틴에 찌든 손톱으로 지 똥구멍을 피스팅하는 걸 보면 이런 느낌일까.

p.s. 마지막 인도미너스 랩터 추락씬을 강조한답시고 다각도에서 찍어 여러번 보여주는 연출은 정말 끝내주게 웃겼다. 80년대 홍콩 액션에서나 나올법한걸 여기서 보다니.


(영화는 딱 이런 느낌.)

(Capitalism W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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