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고쿠도 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시미즈 아키가 그린 <망량의 상자> 코믹스판이었다. 굉장히 고풍스러우면서 독특한 전개와 결말이 인상깊었기에 언젠가는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광골의 꿈>은 말하자면 너무 멀리 갔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은 소설을 다 읽을때까지도 전부 외우기 힘들며, 관계없어보이는 여러 사건을 묶는 방식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 덕분에 끈적하게 잡아놓은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결말부에서 완전히 개박살난다.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살인사건은, 존재할 수는 있을지언정 소설의 소재로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결국 교고쿠도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만 남았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장광설의 용도다. 소설은 영화나 만화처럼 그래픽적인 요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삽화...는 논외로 생각하자. 그렇다면 소설의 분위기, 색감을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나는 소설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광설이 미장센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스릴러물은 대개 장광설이 없다. 마치 영화의 각본처럼 정확히 필요한 부분만을 편집하여 전달한다. 결과물은 빠르게 읽힐지언정 뭔가 하나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간만에 장광설이 빼곡히 들어찬 이미지파 소설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장광설이 소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러면 지금 당장 <백경>의 첫 장을 펼쳐, 바다에 관한 장광설을 죽 읽어보자. 그것을 읽고 난 당신은 이미 바다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모험에 굶주린 항구의 남자가 되어있을 테니까.
'묘사'와는 다르다. 아무리 정밀하게 묘사해도 글로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일이다. 장광설은 묘사하지 않는다. 독자가 스스로 이미지를 그려내도록 유도한다. <백경>의 첫 장을 읽고 독자들이 그려낸 항구의 이미지는 전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 떠올린 미장센에서 유도되는 결과는 같은 것이다.
<광골의 꿈>은 분명 별로인 소설이었지만, 나는 그 미장센 하나를 보고 다음 시리즈를 빌려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