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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6일 금요일

누구도 가지 않은 길(?) - <라이프피오디> (1993년작, 론 실버 감독/ 론 실버 주연)


우주선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나고, 구명정에 오른 몇 명의 승객들을 제외한 전원이 본함의 폭발과 함께 사망한다. 겨우 살았다고 안도하지만, 폭발압에 의해 본함의 원 궤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온데다, 설상가상 구명정 내 연락장치까지 망가진 상황. 고압배선의 고장으로 격리되어버린 조종사는 방사선차폐막 오류로 서서히 죽어가고, 평상시 관리소홀로 비상식량과 식수도 부족한 상태. 생존자들은 구조될 수 있을 것인가.

대단한 영화다. imdb를 포함 인터넷의 그 어디에서도 정보를 찾기 힘들다. 어지간한 B급 영화들은 매니아층에게 몇 번은 다뤄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서양 웹사이트를 뒤적여 봐도 '어릴 적 비디오대여점에서 보았다'정도의 증언만 간간이 보일 뿐. 물론 나도 생판 처음 보는 영화지만, 갑자기 다른 곳도 아니고 넷플릭스에 떡하니, 추천영화로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매력적인 설정이라니, 한 번쯤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영화는 히치콕의 1944년작 <구명보트>를 우주 배경으로 재해석한 물건이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는 생존자들은 밀실 심리스릴러를 구성하며, 막막한 우주공간에서 어떻게든 생존을 모색하는 주인공들은 굉장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기자 출신 생존자의 카메라에 남겨진 영상들로 폭발의 진위를 추리하는 이야기는 의외의 지적 유희를 제공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생각보다 훨씬 나쁘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아쉽다. 93년작임을 감안해도 20년은 뒤떨어진 특수효과와 소품들이 그랬고, 여러 사건들의 진상이 밝혀지는 타이밍도 서로 어긋나면서 엔딩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렸다. 추리소설로 예를 들자면, 긴장감 넘치게 살인사건이 벌어지다가 범인이 먼저 노출되고, 탐정이 사건현장을 살펴보며 혼잣말로 트릭을 알려주고, 그리고 나서야 사람들을 모아서 꾸역꾸역 이미 알고 있는 범인과 트릭을 다시 설명한 다음 마지막으로 동기를 말해주는 그런 느낌. 조용히 떡밥만 뿌리고 나중에 한 번에 몰아서 터뜨렸어야지.

평가를 그렇게 박하게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추천할만한 거리는 못 된다. 넷플릭스에서도 고화질 영상을 못 구했는지 480p수준의 저화질은 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설정이 매력적이라 안 보고는 못 배기겠다면, 까짓거 90분쯤 타임킬링하기엔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격리당한 채 서서히 죽어가며 생존자들을 살리려 분투하는 조종사. 배우 이름은 CCH 파운더. 스크린샷으로는 특수효과나 분장이 얼마나 구린지 잘 전해지지 않지만,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화질과 화면비율에서 벌써 똥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배우 CCH 파운더는 최신작 <고질라2 : 킹 오브 몬스터즈>에도 출연했다. 새삼스럽지만 영화 한 편에서 나오는 수십-수백명의 배우 중 우리가 이름을 아는 배우는 끽해야 몇 명뿐. 수없이 많은 단역배우들은 어디서 데뷔하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상사 정말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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