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 하지만 이런저런 부위에 이상이 많은 게 누가 봐도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현장이 원래 다 그렇듯 어지간한 하자는 임의조치로 넘겨버리는데, 과연 오늘도 잘 넘어갈 수 있을까.
흥행참패작이지만 출연진도 화려하고, 감독도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들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핸콕>이라던가 <배틀쉽>이라던가. 흥행여부와 관계없이 취향만 맞으면 일정 이상의 재미는 보장됐었고, 그것은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 일단 글을 시작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굉장히 재밌다.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을 바탕으로 엄청나게 빠른 진행과 시뻘건 불길로 가득 찬 화끈한 화면으로 가득하다. 석유시추선 재난영화에 대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기름기 쫙 뺀' 담백한 구성이 주는 청량감은 가히 엄청나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재미없다고 평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왜 망했을까'
난 영화가 쓸데없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게 <매트릭스>때부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이슈, 철학, 풍자, 뭐 그런 잡다한 것들. 한국은 특히 심해서 현실과 괴리된 영화는 어지간해선 흥행하질 못한다. 그래서 결국 현실풍자코미디와 현실풍자스릴러, 혹은 과거사 미화영화가 흥하는 거겠지. <신과 함께>는 SF 판타지 영화로서 굉장히 드문 성공케이스지만, 결국 SF적 요소,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신파에 기대어 성공한 감이 크니까.
<딥워터 호라이즌>은 그렇게 근래 영화들이 성공하기 위해 채택하는 그런 공식들이 결여되어 있다. 사건도 거의 각색되지 않은 상태로 재현되는데, 때문에 책임관계도 명확하고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순간도 딱히 없다. 그 누구도 영웅적으로 활약하지 못하며, 기적적인 일도 없고, 굳이 그런 순간을 포착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시추선은 당연하다는 듯 붕괴되고, 사람들은 각기 흩어져 죽거나 탈출하고, 생존자들은 구조된다. 엄청나게 빠른 편집 덕에 관객이 느끼기엔 뭔가가 휙휙 터지더니 스탭롤이 올라와버리는 느낌. 그 흔한 서양의 가족주의 신파조차 이 영화에선 최소화되어 있다.
차라리 더 예산을 줄이고 현실감을 살리는 영화를 찍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상업영화 특성상 그러기 힘들었겠지. <그래비티>같은 건 감독이 알폰소 쿠아론 급이라 가능했겠고. 결국 전세계 흥행 참패, 한국에서는 고작 10만 관객으로 그 <판도라>의 50분의 1수준밖에 못 했다는 게 참 아쉬운 영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매우 재밌다. <판도라>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영화는 조루일까 속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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