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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8일 수요일

정말 고양이처럼 - < 고양이의 보은 > (2003년작, 히로유키 모리타 감독/이케와키 치즈루 등 CV)


차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해준 주인공. 그 이후 묘하게 고양이들이 치덕대기 시작하는데...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들의 쓸데없이 격한 보은으로부터 도망치는 소소한 이야기.

길고양이에게 정을 줘 본 적이 있는가? 오늘 졸졸졸 따라오며 아양을 떨어도 뒤돌아서면 어느새 사라져있고, 뒤에 다시 만나면 날 기억도 못한다는 듯 무심히 지나가는.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인물들의 관계는 워낙 쿨해서 서로 싫어하기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나면 모두들 제 갈 길로 사라져버린다. 간만에 일말의 여운도 없이 담백했던 영화. 다 보고 나니 영화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도 잊어버리는 느낌이다. 길고양이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고 생각해야지. 필시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을 테니까. 이젠 떠오르지 않아도 그것은 좋은 영화다. 

(분명 재회했음에도 서로 모른다는 듯 지나쳐가는 고양이와 주인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좋다. 그런 담백함을 느껴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소소한 만큼 저예산의 티가 나는 동화들과 좀 무미건조한 성격의 캐릭터들은 담백함을 살리기 위해 제거된 조미료라고 생각하면 딱이지.)

2020년 4월 6일 월요일

흘러가듯 만나고 헤어지고 - < 마루 밑 아리에티 > (2010년작,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시다 미라이 등 CV)


언제부터였을까, 절대적이던 지브리의 작품에 묘한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브리는 점점 더 밋밋해지기 시작했고,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마루 밑 작은 주민들이 인간에게 들키고, 잠깐의 위험 끝에 떠나간다는 이야기. 주인공 소년은 소인들을 돕지만 과몰입하지 않고, 소인들도 끈적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담백하게 감사를 표한 뒤 떠나간다. 드라마틱하게 사건이 엮이지도 않고, 과하게 감정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이제 이 작품이 나오고 10년을 더 살았다. 당시의 활기가 나에겐 없다. 이제 조용히 있다 조용히 떠나가는 미덕을 안다. 그리고 그 잔잔함 속에 흐르는 멜랑콜리함을 읽을 수 있다. 

소년은 꽤나 차갑게 소인들을 멸종해가는 종족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리고 그런 운명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떠나간 소인들은 아마 그 뒤로 영영 사라져 버렸겠지.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나는 내 추억 속의 무언가를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눅눅했던 서재의 이리저리 찢긴 안락의자도, 누렇게 변색되어있던 책들 속 활자들도, 마치 존재할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향수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들이여, 안녕히. 붙잡고 싶던 이야기들도, 안녕히.

(조금 지나고 영화를 곱씹어 보면 사족인 부분이 없잖이 있었다. 굳이 여기에 생태계 파괴와 인종 관련 이슈를 끼워넣을 만한 장치들을 박아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과 아리에티의 대화에 '안녕'이상의 문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갈 이유가 있었을까? 덕분에 쓸데없이 해석의 여지만 많아지고, 이게 작품의 평가절하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안타까워라.)

2020년 4월 5일 일요일

애니메이션한테 기만당하는 날이 오는구나 -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2017년작,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호시노 겐 등 CV)


한창 마시던 중, 사람들 사이에서 내숭떨며 홀짝거리는 데 지쳐 교토의 술집 거리로 뛰쳐나가는 아가씨와 어떻게든 사랑을 고백하려 그녀의 뒤를 쫓는 평범한 남자. 

영화는 내가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전부 담고 있다. 무서울 것 없이 막 들이대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진탕 즐기고, 그러면서도 순수하며 반짝거리는, 이걸 뭐라고 하더라.. 청춘이라고 하던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라는 제목은 작중 클라이막스에 한 등장인물이 주인공 아가씨의 등을 떠밀며 하는 대사이다. 그렇게 인싸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훈훈한 결말을 보고 나면 가슴 속에 시커먼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그 타르덩어리같은 뭔가를 치우고 나면 거기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을 것이다. 

카게나시 기법이니 뭐니 영화기술적인 요소를 주절거릴 힘이 없다. 인생에서 단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아웃사이더로서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동시에 많이 울었다.

(대학 시절, 슬램덩크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며 내 학창시절의 덧없음에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그것들은 나의 부족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워주는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마찬가지다.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영화는 나에게 없던 가상의 여름을 채워넣어준다. 앞으로 더운 여름날 남들이 그들의 후텁지근하면서도 어딘가 상쾌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존재하지 않는 짧은 여름밤을 추억할 수 있겠지. 그만큼 좋은 영화다.)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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