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절대적이던 지브리의 작품에 묘한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브리는 점점 더 밋밋해지기 시작했고,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마루 밑 작은 주민들이 인간에게 들키고, 잠깐의 위험 끝에 떠나간다는 이야기. 주인공 소년은 소인들을 돕지만 과몰입하지 않고, 소인들도 끈적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담백하게 감사를 표한 뒤 떠나간다. 드라마틱하게 사건이 엮이지도 않고, 과하게 감정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이제 이 작품이 나오고 10년을 더 살았다. 당시의 활기가 나에겐 없다. 이제 조용히 있다 조용히 떠나가는 미덕을 안다. 그리고 그 잔잔함 속에 흐르는 멜랑콜리함을 읽을 수 있다.
소년은 꽤나 차갑게 소인들을 멸종해가는 종족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리고 그런 운명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떠나간 소인들은 아마 그 뒤로 영영 사라져 버렸겠지.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나는 내 추억 속의 무언가를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눅눅했던 서재의 이리저리 찢긴 안락의자도, 누렇게 변색되어있던 책들 속 활자들도, 마치 존재할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향수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들이여, 안녕히. 붙잡고 싶던 이야기들도, 안녕히.
(조금 지나고 영화를 곱씹어 보면 사족인 부분이 없잖이 있었다. 굳이 여기에 생태계 파괴와 인종 관련 이슈를 끼워넣을 만한 장치들을 박아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과 아리에티의 대화에 '안녕'이상의 문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갈 이유가 있었을까? 덕분에 쓸데없이 해석의 여지만 많아지고, 이게 작품의 평가절하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안타까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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