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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5일 일요일

애니메이션한테 기만당하는 날이 오는구나 -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2017년작,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호시노 겐 등 CV)


한창 마시던 중, 사람들 사이에서 내숭떨며 홀짝거리는 데 지쳐 교토의 술집 거리로 뛰쳐나가는 아가씨와 어떻게든 사랑을 고백하려 그녀의 뒤를 쫓는 평범한 남자. 

영화는 내가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전부 담고 있다. 무서울 것 없이 막 들이대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진탕 즐기고, 그러면서도 순수하며 반짝거리는, 이걸 뭐라고 하더라.. 청춘이라고 하던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라는 제목은 작중 클라이막스에 한 등장인물이 주인공 아가씨의 등을 떠밀며 하는 대사이다. 그렇게 인싸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훈훈한 결말을 보고 나면 가슴 속에 시커먼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그 타르덩어리같은 뭔가를 치우고 나면 거기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을 것이다. 

카게나시 기법이니 뭐니 영화기술적인 요소를 주절거릴 힘이 없다. 인생에서 단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아웃사이더로서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동시에 많이 울었다.

(대학 시절, 슬램덩크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며 내 학창시절의 덧없음에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그것들은 나의 부족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워주는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마찬가지다.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영화는 나에게 없던 가상의 여름을 채워넣어준다. 앞으로 더운 여름날 남들이 그들의 후텁지근하면서도 어딘가 상쾌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존재하지 않는 짧은 여름밤을 추억할 수 있겠지. 그만큼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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