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목록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죽은 감독의 우울한 디테일 - <맨추리안 캔디데이트> (2004년작, 조나단 드미 감독/덴젤 워싱턴 주연)


개인적으로 무척 우울한 날이다. 아침부터 머리가 무겁고, 부정적인 생각들과 기억들이 머리 속에서 가시질 않는다. 이럴 때면 내 손에 당장 권총이 쥐어져 있던 나날들을 떠올린다. 그렇게나 가까이 있었는데, 어차피 난 용기가 없었다.

불평한들 뭐하랴. 영화를 틀었다. 04년, 이게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까맣게 잊은 채 14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서야 겨우 틀어보는구나.

영화는 디테일로 만들어진다. 감독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배우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눈썹의 작은 움직임조차 눈에 띌 정도로 가까이. 그들의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가 단음계 음악을 보는 듯한 편집으로 엮여 건조하면서도 우울한 영화가 완성된다.

프랭크 시나트라 주연의 62년작에 비해 평가가 낮다. 난 62년작은 보지 못했지만, 얼추 이유는 알 것 같다. 미리 세뇌해놓은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켜 국가를 소유하려 든다는 스토리는 지금에 와선 진부한 느낌이 강하고, 한창 이념대립이 심했을 당시에는 이렇게라도 해서 국가의 방향성을 조작할 당위성이 충분했지만, 04년은 이미 냉전시대가 종식된지 오래였다. 이념이 아닌 자본주의적 논리로 대통령을 조종하려 든다는 04년의 각본은 글쎄, 그렇게까지 설득력이 있지는 않으니까.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감독 조나단 드미는 작년에 죽었다.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의 영화를 보는 것은, 사실 크게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기분이 묘하다. 이는 내가 죽은 다음 이처럼 남길 것이 없음을 걱정하는 감정일까, 아니면 단순히 죽는다는 개념에 대한 두려움일까. 난 왕언장처럼 호사유피 인사유명을 외치며 죽어갈 호걸은 결코 못 될 테니, 아마 후자겠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쓰레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