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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각본의 욕심에 매몰되어버린 크리쳐 - <콰이어트 플레이스> (2018년작, 존 크래신스키 감독/ 존 크래신스키, 에밀리 블런트 주연)


작은 소음이라도 났다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소음의 원인을 찢어발기는 괴생명체가 지배하는 세상. 주인공 가족은 수화로 대화하며 가능한 한 조용히 살아가는 방식으로 생존 중이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오고, 귀머거리 딸내미의 반항심이 폭발하는데다 길가던 주인공과 아들내미는 아내를 잃고 멘탈이 나가서 비명을 질러대는 노인을 만나는데...

영화의 대부분을 묵음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관객들도 소리에 민감해지게 만든다는 영화의 컨셉은 좋았다. 오프닝 씬 이후 처음으로 다시 소리가 났을 때 주인공들과 같이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경험은 새로웠으니까. 

상황을 꼬아놓는 실력도 좋다. 조금 안전해졌다 싶으면 어디선가 문제거리가 발생하고 사건이 터져서 보는 사람의 염통을 꽤나 쫄깃하게 만든다. 

하지만 의외로 재주가 좋았던 영화. 거기까지다. 영화는 간만에 굉장해질 수 있었던 소재를 가지고 크리쳐물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삐끗한다. 명료한 설정이다. 

밑도 끝도 없이 세계가 대충 망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가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것은 뭐 요즘은 시적 허용같은 분위니까 오케이. 하지만 설정이 명료하질 않으니 오롯이 영화에 집중해야 될 관객의 머릿속에 자꾸 반론이 생긴다. 아니 왜 저 좆밥같은 크리쳐에 세상이 100일도 안되서 망한거야? 강가에선 그냥 소리내도 물소리에 묻혀서 안위험하다고? 그럼 강가에서 살면 되잖아? 크리쳐들 돌아다니는데 애새끼 낳아놓으면 무슨 수로 조용히 시키려고 임신까지 했대? 갑자기 지하실에 물은 왜 차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쳐는 도대체 뭐가 약점이길래 보청기만 켜면 빌빌거려?

내가 오타쿠새끼라 그냥 보면 될 걸 쓸데없이 츳코미질을 하고있는 것 같다고? 뭐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난 결국 저 의문점을 영화 내내 이해하지 못하고 구글검색을 켰다. 크리쳐물은 분명 미확인생물과 인간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메인디시인데 영화가 끝나고 관객의 머릿속에 남은 게 쟤들 대체 뭐 한거냐는 의문이다? 이건 망한거거든. 

보청기 부분은 특히 이해불가능한 게, 빛무위키에 적혀있는 대로 크리쳐가 쏜 음파를 보정해서 반사하기 때문에 귀가 예민한 크리쳐가 시끄러워하는 것이다? 아니 음파를 쏘는 형태의 크리쳐면 소리를 듣고 나타나는게 아니라 청각을 시각처럼 활용했어야지. 그럼 그냥 보청기가 증폭시킨 소리가 시끄러워서 빌빌거렸다? 세상 망하는동안 사람들 다 뭐했어? 고작 보청기 소리도 못따라갔다 이거야? 심지어 소리 좀 듣겠다고 열어놓은 귓구멍에 샷건 한방 박으니 골로 가버리는 개약체 크리쳐들을 데리고 뭐? 포-스-트-아포칼립스?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크리쳐중에 정말 무시무시하고 재밌었던 영화가 있었다. <불가사리>다. 코믹 활극에 크리쳐물이 더해진 이 영화의 크리쳐들은 땅 속을 기어다니는데, 지면으로 느껴지는 진동을 이용하여 목표물을 추적한다. 그리고 진짜 기깔나게 머리가 좋아서, 처음에는 단순히 지면에서 떨어져 간이구조물이나 자동차 위로 피하면 추격을 멈췄지만, 이후 먹잇감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구조물을 흔들어 떨어뜨리거나 자동차 밑에 구멍을 파 전복시켜버린다. 결국 점점 안전지대가 줄어들고, 완전히 안전해지려면 크리쳐들이 절대로 범접할 수 없게 바위 위 같은 곳으로 피신해야 되는데, 사람이 영원히 바위 위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어떻게든 크리쳐를 죽이거나 따돌려야 되는 상황에서 그 긴장감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굳이 왜 다른 영화를 끌어와서 관심도 없는 스토리를 줄줄이 나불대느냐, <불가사리>와 이 영화의 극적인 차이 때문이다. 바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라는 것.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패착이자,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자, 단 하나의 오점은 바로 배경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사실이다. <불가사리>처럼, 영화가 그냥 '어느 외진 마을에~'로 시작하면 모든 게 명료해질 수 있었다. 그 마을을 제외한 세상은 잘 돌아가는 중이니 임신한 것도 이상할 게 없고, 사실 단순하고 약해빠져서 세계멸망과는 거리가 좀 먼 크리쳐의 능력치도 미확인 생물체의 외딴 마을 습격으로 스케일을 줄인다면 충분히 무시무시해진다. 큰 소리를 들어봤을만한 전적이 없으니 보청기공포증이 약점이라는 사실도 이해해줄 수 있고, 갑자기 지하실에 물이 차는 장면은 뭐 하수도관이 터졌다고 하지 뭐.

정리하자면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린 영화. 영화의 컨셉은 완전 본격 크리쳐물인데, 설정은 모호하게 대충 때우고 가족드라마나 찍고 있으면 어떡해. 왠지 근래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하는 말 같지만, 크리쳐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크리쳐에게 그에 맞는 배역을 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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