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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1일 월요일

목적이 없는 선택은 노잼인것을 왜 모를까. - <밴더스내치> (2018년작, 감독 불명/피온 화이트헤드 주연)


때는 1980년대, 처음으로 명령어 입력방식이 아닌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이 발매되기 시작하던 시절. 주인공은 소설을 원작으로 선택지 기반 어드벤처 게임을 구상하던 중, 자신의 인생도 누군가의 명령어 입력으로 구현되는 중이 아닌가 하는 근거 있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인터랙티브 무비라니. 어떻게 보면 정말로 넷플릭스 다운 발상이다. 어차피 극장개봉작 급의 고수익은 보장되지 않을 테니 장르의 다양화와 신선함으로 시장을 뚫겠다는 의지인가.

하지만 거기까지다. 인터렉티브 무비는 이미 60여년 전 시도되었던 장르이며, 한창 CD기반 게임기들이 득세하던 시절 무려 주류를 이루었었고, 현재도 영화가 아닌 게임업계에선 나름의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히트작도 꾸준히 나오는 중이다. 플랫폼이 스팀이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점만 제외하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 미장센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저예산인 만큼 미장센에 큰 공을 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전반적으로 전혀 80년대의 느낌을 주지 못하는 미장센. 주인공들이 다루고 있는 기기들을 제외하면 전부 현대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작중 설정년도와 화면의 위화감이 이렇게까지 심한 작품은 거의 처음이다. 뭐가 문제일까. 인물들의 패션? 모던한 건물들? 지나치게 세련된 장면들?

마지막은 안이함이다. 인터랙티브 무비의 매력은 선택지를 통해 관객이 직접적으로 영화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재미를 위해서는 각 선택지가 언제나 중요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 고민되는 선택지가 튀어나오고, 관객이 스스로 이 영화의 전개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이 부분은 개인에 따라 만족도가 다른데, 누군가는 직접 인물을 하나하나 조종하는 수준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선택지에 적당한 고민거리만 들어있다면 충분히 만족한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단순히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는 것이다. <밴더스내치>의 선택지는 무의미하다. 애초에 <밴더스내치>에서 벌어지는 사건 자체가 무의미하다. 주인공은 게임을 발매하는 도중에 그를 조종하는 모종의 존재에 대해 눈치채지만, 영화는 게임을 성공적으로 발매하는 것이 목적도 아니며, 모종의 존재를 파헤치는 것이 목적도 아니다. 목적이 없으니 의도를 가지고 선택지를 고민할 일도 없으며, 결국 관객과 극 내의 주인공들 모두가 들러리일 뿐이다. 와! 주인공이 내가 선택한 대로 움직였어! 이 사실 하나로 호평할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가? 안일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촌스럽다'와 '시대에 뒤떨어졌다'의 뉘앙스 차이를 생각해보자. <벤더스내치>는 촌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졌다'. 1980년을 배경으로 하는 게 아니라 1980년에 나왔어야 될 영화를 왜 지금 쳐만들고 있어 넷플릭스 돼지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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