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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9일 토요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란 말이다 - <십팔반무예> (1982년작, 유가량 감독/주연)

서양의 무기(총)을 쿵푸로 단련된 몸으로 막겠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중국.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싼 총값 대신 싸게 부하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차익을 빼먹겠다는 고위관료들의 부패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를 알고 제자들을 의미없이 희생시킬 순 없다며 도망친 쿵푸명인 유가량. 정부에서는 이런 유가량의 존재가 병사들의 사기를 흐트러뜨린다고 생각하여 각 부서에서 암살자 하나씩을 뽑아 보내는데...

국적불명의 포스터지만 추억의 등장인물들을 가장 깔끔하게 나열해놨길래 들고와봤다. 기억나는가? 가운데 봉을 들고 폼잡는 사람이 좀 뽀샤시하게 나온 유가량, 왼쪽부터 그시절 여전사로 유명했던 혜영홍, 빡빡이는 유가휘,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지금 성룡의 자리에 있었을거라는 불운의 쾌남자 부성, 미간 찌푸린 남자는 유가영, 마지막으로 몸놀림이 엄청 좋았던 배우인 소후.

단순히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지만, 그것을 배제하고서도 영화는 여전히 재미있다. 가장 의외인 부분은, 영화의 대부분이 코미디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슬랩스틱이 아직도 먹힌다는 것이다. 성룡의 <취권>, <사형도수>같은 작품을 기억하는가? 그 작품들의 코미디가 지금 봐도 건재하듯이, 이 영화의 유머도 그러하다.

하지만 재기발랄하고 진보적이었던 성룡의 액션과 달리, 이 영화의 액션은 무척이나 보수적이다. 제목부터 십팔반무예인 만큼 온갖 병장기들을 섞어놓고 벌이는 전통적인 합맞춤은 그저 경이로울 뿐. 누군가가 말하길 이 때의 중국영화는 격투가 아닌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이런 평가는 호평보다는 혹평에 가깝다. 너무 인위적이어서 현실감이 없다는 뜻이지.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그러면 뭐 어떻단 말인가.

요즘 중국 무술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인터넷에는 이종격투기 프로선수가 중국무술가들을 개패듯이 패며 무술의 실전성을 비웃는 영상이 발에 채일 만큼 널렸다. 심지어 몇몇은 보고 즐기라고 만들어놓은 영화에까지 달라붙어 현실성을 따지고 앉았다. '실제로는 저렇게 안 돼.' 우스운 이야기다. 중국 무술은 퍼포먼스적인 면은 물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생각해보라, 냉병기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 지금 중국무술만큼 다양한 냉병기와 수기술의 조합을 정리해놓은 무예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비록 이제는 쓸모가 다했을지언정 그 시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고안한 결과물이 중국 무술인 것이다. 이제 와서 실제로 되고 말고가 무슨 소용인가. 무술은 문화요, 전통이며, 역사다. 연출의 잔재주 없이, 우직하고 보수적으로 시연되는 영화 속 십팔반 병기의 합맞춤이 시각적 즐거움 이상의 어떤 경외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그들의 칼춤을 보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코미디 섞인 가벼운 액션영화에서, 수천 년 역사의 편린을 느끼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는가. 좋지 않은 화질이지만 직접 보도록 하자. 


거의 정통무술 시연에 가까운 영상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눈호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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