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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알면 다를까, 놓으면 다를까. - <은하철도의 밤> (1934년작, 미야자와 켄지 저)


제목에서부터도 짐작 가능하듯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소설이다. 60년대 출판된 책들에서나 (어릴 적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몇 권을 고전 출판본으로 봤었다) 나올 법한 우->좌 세로쓰기 방식의 책. 고전미가 듬뿍 들어있으니 사실 내용이 아니라 추억으로 보는 소설이라 함이 더 옳은 단어일 것이다.

장르는 '동화'이다. 성인의 테이스트와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다. 당연히 은하철도 999에서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요소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린 왕자와 같은 환상소설에 가깝다.

재미있게도, 나는 글을 읽으면서 '주석'이 간절해졌다. 우리네 어린 시절, 전과로 공부하며 흰 바탕에 파란 글로 달려있던 주석들이 그리워진 것이다. 은하철도가 달리며 주인공들이 보는 환상적인 경치들을 나는 모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혹은 이해하려 하기에 모르는 것일까.

남심자성으로 향하는 주인공들의 여정을 보며, 쌍둥이자리, 전갈자리, 백조자리 등을 거칠 때마다 나는 해당 별자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떠올리려 든다. 그리고 책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묘사를 볼 때마다 마치 변수 몇 개가 입력되지 않은 코딩처럼 머릿속의 이미지로 번역하는 데 애러가 생긴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는 가지고 있었지만, 평생 쓸 일이 없던 몇 가지 회로가 폐기되어버린 듯하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덮으며, 왜인지 우울해졌다.

은하철도의 밤 애니메이션판. 1985년작.
본 적이 없을 텐데도, 왠지 한 번쯤 본 것처럼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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