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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4일 목요일

이 악마같은 새끼들아 - <니 노 쿠니2> (2018년작, 반다이 남코)


게임에서 풍겨오는 지브리의 향수만으로 덜컥 지르기 비싼 값임에도 기어코 사게 만드는 게임. 하지만 이 머리를 마비시킬 정도의 향기는 단순히 문드러진 게임의 악취를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스토리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충분히 읽은 바이지만, 사실 jrpg들이 스토리로 호평받는 경우가 근래에 드물고, 특히 좀 동화적인 내용을 담은 jrpg들은 과도한 혹평을 받는 것이 일상이니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내 실수였다.

(현대도시에 핵폭발이 일어나는 오프닝)

(핵폭탄을 맞은 현대에서 이세계로 넘어오는 주인공)

첫 번째 빡침의 두통이 무려 게임의 시작과 동시에 일어나는데, 원래 중년의 대통령이었던 주인공의 나라에 핵이 터지면서 거기에 휘말린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온다는 설정이다. 여기서 뭐 일본의 제국주의가 어쩌구 하는 말은 꺼내지 않겠다. 그 범람하는 이세계물의 싼내가 오프닝 시네마틱에서부터 풀풀 풍긴다는 게 진짜 문제인 것이다.



두 번째는 필드맵. 주인공이 넘어온 세계는 한창 쿠데타가 일어나는 중인 왕궁이었고, 거기에서 왕자를 구출해 빠져나온 주인공이 처음 필드로 나왔을 때가 위의 짤이다. 수려한 지브리의 그래픽은 어딜 가고, SD캐릭터와 카투닉한 보물상자, 몬스터 심볼과는 전혀 맞지 않는 실사그래픽의 평원이 펼쳐져 있다. 이 씹새끼들은 필드맵 만드는 팀과 필드캐릭터 만드는 팀 둘이 아예 별개의 컨셉을 잡았나보지? 거기에 몬스터 심볼의 이동속도는 너무 빨라서 인카운터를 피할 수가 없으며, 척 봐도 필드에 비해 조-온나 작아보이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이동속도는 디아블로2에서 달리기 모션을 꺼 놓은 것처럼 속이 터진다. 당장 위쪽 짤의 오른쪽엔 보물상자가 보이지만, 아마 직접 플레이한다면 거기까지 걷는 행동 자체가 갑갑해서 무시하고 지나갈 것. 상술했듯 몬스터 심볼 이동속도는 존나 빠르니까, 내 캐릭터의 느림이 강조되어서 필드이동 내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스토리. 이 게임의 스토리는 단순히 대상연령층이 낮아서 유치한 게 아니다. 스토리텔링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위 짤에 나온 인물 '알피니'. 한창 쿠데타가 터진 궁궐에 떨어진 주인공(짤 오른쪽 인물)이 왕자(짤 왼쪽 인물)를 구하는 중에 만나는 왕자의 전담 시녀이자 사실상 어머니인 인물이다. 내용상으로는 주인공을 도와 쿠데타의 난국에서 왕자를 피신시키고, 그 부상으로 죽으며 왕자를 개심시키는 역할인데 문제는 플레이어에게 감정이입의 여지를 단 일말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짧게 나와 바로 죽으면서 플레이어에게 동기부여를 하려면 당연히 그만큼 임팩트있는 감정선을 전달해야되는데, 이 씨-발련이 하는 게 뭐냐? '튜토리얼'이다. 말 그대로 등판해서 이런저런 조작법을 알려주더니, 전투조작법을 다 배웠을 때쯤 날아온 파이어볼에 쳐맞고 뒤지면서 왕자한테 질질 짜며 이 나라를 떠나 더 좋은 나라를 세우랜다. 거기에 또 같이 짜면서 알겠다고 대답하는 왕자새끼랑 끄덕거리는 주인공새끼를 보고있자면 복창이 씨발 남아나질 않네 하...


바로 그 다음 에피소드는 공적단이 있는 언덕을 지나가다 들켜서 사로잡히는 에피소드인데, 처음 만난 공적단 쫄다구들은 주인공들을 보자마자 죽여버리려 하지만, 공적단 두목의 딸이 그들을 구해준다. 이유는 '자기 아버지와 눈빛이 닮아서'. 여기까진 글로만 보면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뒤의 장면이다. 공적단 두목이 등판하더니 진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주인공들을 죽이라고 지시한다. 앞뒤가 안 맞잖아요 씨뱅이들아.

하지만 주인공들이 뒤져버리면 진행이 될 리가. 고새 또 두목 딸내미가 와이번에게 잡혀갔다는 급보가 들어온다.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그 딸내미를 구해올테니 언덕을 지나게 해달라고 딜을 걸고, 그걸 들은 두목새끼는 갑자기 알고 보니 남자다운 놈들이었다며 주인공들의 후장을 빨아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선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어 공적단 전원이 주인공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상태가 된다.

최악은 딸내미를 구해오고 난 다음인데, 이 씨박새끼들 후장빨이가 도를 지나쳐서 주인공 일행이 세울 나라에 첫 국민으로 들어오고 싶다며 충성을 맹세하기에 이른다. 뭔 개 좆같은 소리야. 최소한 처음에 죽일 기세로 스탠스를 잡았으면 딸내미를 구해온다고 말할 때 그래놓고 도망가는거 아니냐고 합리적인 의심도 좀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뭐 왕자새끼 옥새라던가 인질도 좀 잡고, 그러고 나서 진짜 두명이서 와이번둥지를 털고 딸내미를 어찌저찌 구해오면 아 정말 된 놈들이구나 하고 진심으로 친해지고, 이런 내용이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시나리오 작법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조차도 명백하게 정정할 수 있을 정도면 도대체 씨발 뭔 생각으로 겜을 만든거야.


나도 안다. 지브리는 망했다. 아예 스튜디오가 해산됐고, 지금은 계약직으로 마지막 작품 작업을 겨우겨우 진행하는 중이다. 내가 지브리를 보던 추억은 벌써 수십년이나 된 이야기고, 내가 늙은 만큼 추억도 죽은 지 오래다. 그래도 씨발년들아 이건 아니지. 이건 자본주의의 악마다. 추악하고 냄새나는 이 악마가 이미 오래전에 죽고 이젠 썩어 문드러진 내 추억의 무덤을 파헤쳐 그 남은 살거죽을 벗겨 입은 채로 날 소비의 늪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개 같은 새끼들. 진심으로 엿이나 먹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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