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소림사 영화. 선풍기를 틀고 냉국수를 먹으면서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내가 좀 더 잘 살았으면, 냉냉한 마루에 시원하게 앉아서 탁상 위에 음식을 차리고 영화를 볼 텐데. 그러면 정말 살맛나는 여름이 될 텐데.
구 명나라의 한족으로서 청의 만주족에게 핍박받던 방세옥이 온갖 말썽을 일으키고, 소림사로 숨어들어갔다가 다시 또 만주족과 대적하게 된다는 이야기. 유가량 표 영화답게 스토리엔 별 관심이 없고 액션연출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영화다.
이 당시의 중국영화들은 어지간해선 다 제 값을 했다. 배우들이 전부 서커스 수준의 스턴트가 가능한, 세계에 다시 없을 세대의 사람들이니까. 그냥 그들이 핑핑 돌고 주먹질을 하는 모습만 카메라에 대충 담아도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이 영화는 스토리에 너무 소홀했다. 어느 정도냐면,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메인 악역이 존재하질 않는다. 방세옥은 계속 다른 만주인을 만나고, 그들을 쓰러트린다. 그렇다고 방세옥이 만주인을 쓰러트리는 데에만 미쳐있는 일종의 복수귀인 것도 아니다. 사실상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사건전개는 이제 와선 따라가기 좀 버겁다.
제대로 된 악당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인데. 어째서 그것을 몰랐을까.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추억 속 배우들이 삼절편을 휘두르며 신명나게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그것만으로 좋다. 아버지가 아무런 맛도 없는 연근을 유독 좋아하시며 질겅질겅 씹으시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것은 노스텔지어의 맛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