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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1일 일요일

무색무취 - <바디 오브 라이즈> (2008년작, 리들리 스콧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러셀 크로우 주연)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추적중인 CIA요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러셀 크로우. 현장인원 충원을 위해 요르단 정보국장 마크 스트롱과 협력하게 되는데, 도무지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다.

플롯에 멜로가 끼어들면 꼭 작품이 삼천포로 빠지더라. 개시1발 목숨걸고 현장작전중인데 간호사한테 추파던질 감흥이 날까? 당연히 요원과 친해진 간호사는 테러범에게 납치당하고 관객들은 그 뻔하디 뻔한 클리셰 재탕질에 치를 떨며 지루해해야 한다. 액션영화에 멜로는 그냥 남녀 눈 마주치는 장면과 떡치는 장면 두 개만 넣으면 된다. 진짜로.

딱히 심리적인 긴장감이나 액션이 뛰어난 영화도 아니다. 감독과 배우 이름값에는 한참을 못 미치는 영화. 그래도 평작 정도로는 쳐줄 만 하니 이쪽 장르 초심자들에겐 그럭저럭 볼 만할 듯도.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흥미를 못 끄는 법 - <더 위쳐3: 와일드 헌트> (2015년작, CD프로젝트)


워낙 유명한 게임이기에, 할인가가 만원 이하로 떨어지는 즈음 해서 플레이해보았다. 포스터 우측 인물인 시릴라가 실종되고, 좌측 인물인 게롤트가 찾으러 나선다는 이야기로 스토리만큼은 굉장히 단순한 구조. 그리고 그 단순하면서 왕도적인 설정을 가지고도, 게임은 유저의 흥미를 끄는 데 실패하고 만다. 


(초반 서브퀘스트 라인의 주요인물 키이라 매츠)

빠들에겐 최고의 장점이자, 나같이 게임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에겐 최악의 단점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스토리이다. 뻑하면 오픈월드요 뻑하면 자유도 자유도 부르짖다 사실상 게임을 워킹시뮬레이터로 내보내는 일이 잦은 양키겜답게 당연히 오픈월드 시스템에 스토리 중간중간 선택지가 굉장히 많고, 그에 따라 이후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설계도 굉장히 자잘하다. 좋지. 근데 이렇게 설계하면 복선 혹은 떡밥 활용에 지대한 문제가 생긴다. 이유인즉슨 플레이어가 즉각즉각 선택지를 따라 내용을 만들어가는데,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공통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면 복선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 다른 말로 하면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은 복선 혹은 떡밥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게임의 대다수 이벤트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전개되고, 따라서 게임에 복선이라는 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본인은 키이라가 뒤통수를 치길래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복선이나 떡밥 없으면 문제가 무엇이냐. 후반부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흔히 '떡밥'이라고 하지. 예를 들어 가정해보자. 시작은 시릴라가 실종되면서 남긴 쪽지이다. (암호)지역으로 이동하지만, 자신을 찾지는 말라고 적혀 있다. 쪽지의 암호를 풀어 해당 지역을 찾아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목격한 시릴라는 주인공이 알고 있던 시릴라와 미묘하게 달랐다. 어째서일까? 이게 떡밥이다. 플레이어는 이 떡밥의 정체를 알고싶기에 게임플레이가 좀 지루한 시점이 오더라도 원동력을 얻는다. 반면, 시릴라가 실종된 시점과 주인공에게 의뢰가 걸려온 시점이 묘하게 차이가 있다. 플레이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공백기의 존재를 눈치챈다. 그러면 실종사건을 둔 전반적인 인물들의 행동에 전혀 다른 의미가 보이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이게 복선이다. 그럼 둘 다 없는 이 게임의 진짜 내용은 어떠하냐? 두부심부름이다. '내가 시릴라가 향한 곳을 아는데, 그 정보를 듣고 싶으면 내 부탁을 들어줘'의 단순반복. 게임은 물론 지루해질 수 있다. 그럼 그 동안 유저를 잡고 있을 원동력이 필요한데, 최소한 이 게임에는 그런 게 없다. 


(위쳐3 전투 동영상)

좋아, 스토리가 앞뒤 연계성 없는 일자진행형이라 치자. 그러면 그 사이의 플레이가 재미있는가? 답은 아마 대다수에게 NO일 것이다. 실제로 위쳐의 전투는 상당수의 게이머에게 혹평을 받았고, 나 역시 아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최소한 영상은 게임의 후반부이기 때문에 아이템이나 특수능력이라도 빵빵한 편이지, 내가 플레이했던 15시간 정도는 정말 피하고 툭 치고 굴러서 도망가는 패턴의 연속이었으니까. 실제 검술과 비슷하게 만들려 들었다가, 그러면 너무 게임이 밋밋해지는 바람에 액션을 좀 가미했다는데, 듣기만 해도 극단적 고증오타쿠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일화다. 총질겜에 온갖 탄도학 다쳐박고 만드는 놈들이랑 비슷한 느낌. 이런 오타쿠들이 끼어들면 게임플레이가 극단적으로 느릿느릿해지는데, 이걸 좋다고 빠는 사람들이 그래 없진 않지만 얼마냐 되냔 말이지.

그렇다면 중독성 넘치는 야리코미 요소가 있는가? 역시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단순히 맵에 물음표 표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드시 그 곳에 가야하고, 수집품 목록이 꽉 차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전 맵을 탐험해야 하는 아스퍼거가 아닌 이상 이 게임의 야리코미들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개인적인 총평은 이렇다. 이 겜은 스토리도 씹창이요 액션도 병신이다. 그런데 그 주제에 야리코미조차 무미건조하다. 이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분명 위의 요소들보단 방대하게 짜여진 세계관과 끝없이 나열된 고유명사들을 듣는 데에서 발기하는 이상성욕자새끼들임에 틀림이 없다. 와! 게임상 남쪽에 있는 어떤 도시의 특산품목은 (고유명사)래! 근데 그게 자라는 이유가 사실 (고유명사)가 (고유명사)하기 때문이라는거야! 어쩜 이렇게 세계관을 꼼꼼하게 짰을까? 존나재밌다! 공감하는가? 당신에겐 씹갓겜일테니 당장 가서 플레이해라. 난 평생을 가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내가 스토리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기한 세계관이 아니라, 흥미로운 사건과 세계관과의 논리적인 연관성이 필요하다.

개씨발 위쳐3 니노쿠니2 둘다 돈날림.


2019년 3월 18일 월요일

기본적인 건 지켜야지 새끼들아 - <그 섬> (2019년작, SUPER WAVE STUDIO)


2019년작, 비록 성우지망생들이지만 풀더빙까지 한, 시들어가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장르에 간만의 신작 되시겠다.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똥겜이다. '그 섬'을 모티브로 한 듯한 '그 섬'의 주민들에게 속아 '그 섬'에 들어간 대학생 스쿠버다이빙 팀 일행들이 섬 사람들의 인신매매를 피해 탈출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섬사람들이 워낙 빡대가리 새끼들이라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흩어진 상태에서 공격당해 아무 곳으로나 숨어들어간 주인공들이 딱 그 자리에서 탈출하는 동안만 위협적으로 보일 뿐, 본격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사실상 종범. 이장 집을 털고, 마을에 불을 지르고, 좆대로 통신탑을 장악해 경찰에 연락하고, 무려 혼자 다니는 이장을 잡아다 생매장해놓을 동안 거의 등장조차 없다. 도망치는 상황인데 그 누구도 추격하질 않으니 게임의 긴장감은 그야말로 제로. <빅 릭스>에서 상대편 경주트럭이 스타트라인에 쳐박힌 채 움직이지 않는 걸 보았는가? 이 게임은 빅-릭스를 하는 느낌이다. 탈출하셨네요. YOU ARE WINNER! 넘모 축하드립니다. 엔딩. 끗!



더빙도 개판이다. 그냥 대사 넘어가는 효과음만(타이핑 소리라던지. 흔히 잘각 하고 대사 넘어갔음을 직관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그런 소리들) 넣어주고 더빙값은 아끼지 그랬어. 유튜브 영상을 하나 퍼왔다. 스트리머가 겜 내내 떠드는 영상 말고, 가능한 성우연기가 그대로 들리는 영상을 들고왔으니 직접 한 번 확인해보자.


다음은 이런 게임에 빠질 수 없는 조사 파트. 그럼 여기서 문제. 이 파트에서 조사해야 될 주요 오브젝트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책상 위의 어질러진 문서들과 오른쪽 벽면에 붙은 종이쪼가리입니다! 그럼 시1발 왜 채색은 장식용 칼, 왼쪽 책장의 책들, 지구본에만 되어있습니까? 장난치나. 구글플레이에서 팔고 있는 1500원짜리 인디게임도 이런 짓은 안 한다. 물론 마우스를 해당 오브젝트에 올렸을 때 외곽선 강조효과등이 나와서 직관적으로 '이 물품을 조사하려고 한다'고 알려주는 시스템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딴 식으로 게임을 만들 거면 뭘 조사했을 때 니기미 사람만 툭 튀어나와서 지구본이다! 이지랄하지 말고 최소한 이미 그려져있는 지구본 일러스트를 떼어다가 현재 뭘 조사중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좆같은 화면구성때매 뭘 조사해야될 지 몰라서 이리저리 클릭할 때 최소한 이미 조사한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피해서 찍어볼 수 있을텐데. 제작자들은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면서 비슷한 장르의 다른 게임은 단 한번도 플레이해본 적이 없는건가?


앞서의 문제점들에 전혀 공감이 안되시는 분들께 창고 조사파트 일러스트를 선물합니다 ^오^. 이젠 무엇을 조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아예 감조차 오질 않는다.

그 밖에도 문제는 꽤 많은데, 가볍게 몇 개만 나열한다.

플레이타임 2시간 이하의 개창렬 분량. 멀티엔딩이 있다지만 1회차 엔딩 시 유의미한 떡밥은 커녕 유의미한 스토리조차 없었으니 플레이어가 다음 엔딩을 보려고 똥꼬쇼할 이유...어디?

아이템 사용 시, 장비한 아이템을 한 번 잘못된 곳에 사용하면 장비상태가 풀려버리는지라 틀릴때마다 계속 재장비해야되는 문제. 방탈출게임을 몇 개만이라도 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특정 아이템으로 무언가를 해야되는 기믹에서 으레 여기저기 클릭해야 되기 마련이다. 송곳으로 책상에 구멍을 뚫는건가? 얼음을 부술 수 있나? 아니면 인형에라도 찌르는건가? 그래서 한 번 장비한 송곳은 플레이어가 따로 명령을 입력하기 전까지 계속 장비된 상태다. 심지어 오른쪽 장비칸에서 바로 장비하면 되는 방탈출겜들과 달리 이 게임은 오른쪽 위 핸드폰 메뉴로 들어가서 아이템 메뉴를 클릭한 다음 다시 아이템 중 장비하려는 것을 클릭, 아이템 설명창에서 해당 아이템의 섬네일을 다시 클릭해야 비로소 장비가 되는지라 한 번 잘못 클릭해서 장비상태 풀리면 진짜 조빡친다고.

조사파트에서 시간경과 시 조사중인 내용이 묘하게 바뀌는 시스템. 이건 최소한 타이머를 줬어야 했다.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없던 사람이 나온다던가, 어딘가에 달랑달랑 매달려있던 물품이 떨어지면서 등장한다던가 그런 느낌의 시스템(실제로는 진짜 아무 맥락도 없이 없던 소주병이 생긴다던가 그런다. 그대로 말하면 설명이 안 되는지라 앞뒤 맥락을 붙여 포장한 것이다.)이 존재하는데, 언제 뭐가 어떻게 바뀔 줄 알고 플레이어가 그걸 대기타고 시스템을 활용하겠나.

시험플레이조차 안 해본 걸 팔아제낀 것일까?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글을 쓰는 시간이 플레이타임을 아득히 상회한 듯하니 그만 쓰겠다. 사실 존나게 까는 와중에도 이런 게임 신작이 아직 나온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반갑다. 텍스트어드벤처 너무 좋아. 더 나와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기본적인 건 지켜야지 새끼들아.

(마지막으로 이 장면 채색된 오브젝트 3종 조사결과나 보고 가세요)









(이씨1발 ㅎㅎ)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알면 다를까, 놓으면 다를까. - <은하철도의 밤> (1934년작, 미야자와 켄지 저)


제목에서부터도 짐작 가능하듯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소설이다. 60년대 출판된 책들에서나 (어릴 적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몇 권을 고전 출판본으로 봤었다) 나올 법한 우->좌 세로쓰기 방식의 책. 고전미가 듬뿍 들어있으니 사실 내용이 아니라 추억으로 보는 소설이라 함이 더 옳은 단어일 것이다.

장르는 '동화'이다. 성인의 테이스트와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다. 당연히 은하철도 999에서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요소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린 왕자와 같은 환상소설에 가깝다.

재미있게도, 나는 글을 읽으면서 '주석'이 간절해졌다. 우리네 어린 시절, 전과로 공부하며 흰 바탕에 파란 글로 달려있던 주석들이 그리워진 것이다. 은하철도가 달리며 주인공들이 보는 환상적인 경치들을 나는 모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혹은 이해하려 하기에 모르는 것일까.

남심자성으로 향하는 주인공들의 여정을 보며, 쌍둥이자리, 전갈자리, 백조자리 등을 거칠 때마다 나는 해당 별자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떠올리려 든다. 그리고 책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묘사를 볼 때마다 마치 변수 몇 개가 입력되지 않은 코딩처럼 머릿속의 이미지로 번역하는 데 애러가 생긴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는 가지고 있었지만, 평생 쓸 일이 없던 몇 가지 회로가 폐기되어버린 듯하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덮으며, 왜인지 우울해졌다.

은하철도의 밤 애니메이션판. 1985년작.
본 적이 없을 텐데도, 왠지 한 번쯤 본 것처럼 정겹다.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이 악마같은 새끼들아 - <니 노 쿠니2> (2018년작, 반다이 남코)


게임에서 풍겨오는 지브리의 향수만으로 덜컥 지르기 비싼 값임에도 기어코 사게 만드는 게임. 하지만 이 머리를 마비시킬 정도의 향기는 단순히 문드러진 게임의 악취를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스토리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충분히 읽은 바이지만, 사실 jrpg들이 스토리로 호평받는 경우가 근래에 드물고, 특히 좀 동화적인 내용을 담은 jrpg들은 과도한 혹평을 받는 것이 일상이니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내 실수였다.

(현대도시에 핵폭발이 일어나는 오프닝)

(핵폭탄을 맞은 현대에서 이세계로 넘어오는 주인공)

첫 번째 빡침의 두통이 무려 게임의 시작과 동시에 일어나는데, 원래 중년의 대통령이었던 주인공의 나라에 핵이 터지면서 거기에 휘말린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온다는 설정이다. 여기서 뭐 일본의 제국주의가 어쩌구 하는 말은 꺼내지 않겠다. 그 범람하는 이세계물의 싼내가 오프닝 시네마틱에서부터 풀풀 풍긴다는 게 진짜 문제인 것이다.



두 번째는 필드맵. 주인공이 넘어온 세계는 한창 쿠데타가 일어나는 중인 왕궁이었고, 거기에서 왕자를 구출해 빠져나온 주인공이 처음 필드로 나왔을 때가 위의 짤이다. 수려한 지브리의 그래픽은 어딜 가고, SD캐릭터와 카투닉한 보물상자, 몬스터 심볼과는 전혀 맞지 않는 실사그래픽의 평원이 펼쳐져 있다. 이 씹새끼들은 필드맵 만드는 팀과 필드캐릭터 만드는 팀 둘이 아예 별개의 컨셉을 잡았나보지? 거기에 몬스터 심볼의 이동속도는 너무 빨라서 인카운터를 피할 수가 없으며, 척 봐도 필드에 비해 조-온나 작아보이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이동속도는 디아블로2에서 달리기 모션을 꺼 놓은 것처럼 속이 터진다. 당장 위쪽 짤의 오른쪽엔 보물상자가 보이지만, 아마 직접 플레이한다면 거기까지 걷는 행동 자체가 갑갑해서 무시하고 지나갈 것. 상술했듯 몬스터 심볼 이동속도는 존나 빠르니까, 내 캐릭터의 느림이 강조되어서 필드이동 내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스토리. 이 게임의 스토리는 단순히 대상연령층이 낮아서 유치한 게 아니다. 스토리텔링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위 짤에 나온 인물 '알피니'. 한창 쿠데타가 터진 궁궐에 떨어진 주인공(짤 오른쪽 인물)이 왕자(짤 왼쪽 인물)를 구하는 중에 만나는 왕자의 전담 시녀이자 사실상 어머니인 인물이다. 내용상으로는 주인공을 도와 쿠데타의 난국에서 왕자를 피신시키고, 그 부상으로 죽으며 왕자를 개심시키는 역할인데 문제는 플레이어에게 감정이입의 여지를 단 일말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짧게 나와 바로 죽으면서 플레이어에게 동기부여를 하려면 당연히 그만큼 임팩트있는 감정선을 전달해야되는데, 이 씨-발련이 하는 게 뭐냐? '튜토리얼'이다. 말 그대로 등판해서 이런저런 조작법을 알려주더니, 전투조작법을 다 배웠을 때쯤 날아온 파이어볼에 쳐맞고 뒤지면서 왕자한테 질질 짜며 이 나라를 떠나 더 좋은 나라를 세우랜다. 거기에 또 같이 짜면서 알겠다고 대답하는 왕자새끼랑 끄덕거리는 주인공새끼를 보고있자면 복창이 씨발 남아나질 않네 하...


바로 그 다음 에피소드는 공적단이 있는 언덕을 지나가다 들켜서 사로잡히는 에피소드인데, 처음 만난 공적단 쫄다구들은 주인공들을 보자마자 죽여버리려 하지만, 공적단 두목의 딸이 그들을 구해준다. 이유는 '자기 아버지와 눈빛이 닮아서'. 여기까진 글로만 보면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뒤의 장면이다. 공적단 두목이 등판하더니 진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주인공들을 죽이라고 지시한다. 앞뒤가 안 맞잖아요 씨뱅이들아.

하지만 주인공들이 뒤져버리면 진행이 될 리가. 고새 또 두목 딸내미가 와이번에게 잡혀갔다는 급보가 들어온다.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그 딸내미를 구해올테니 언덕을 지나게 해달라고 딜을 걸고, 그걸 들은 두목새끼는 갑자기 알고 보니 남자다운 놈들이었다며 주인공들의 후장을 빨아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선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어 공적단 전원이 주인공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상태가 된다.

최악은 딸내미를 구해오고 난 다음인데, 이 씨박새끼들 후장빨이가 도를 지나쳐서 주인공 일행이 세울 나라에 첫 국민으로 들어오고 싶다며 충성을 맹세하기에 이른다. 뭔 개 좆같은 소리야. 최소한 처음에 죽일 기세로 스탠스를 잡았으면 딸내미를 구해온다고 말할 때 그래놓고 도망가는거 아니냐고 합리적인 의심도 좀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뭐 왕자새끼 옥새라던가 인질도 좀 잡고, 그러고 나서 진짜 두명이서 와이번둥지를 털고 딸내미를 어찌저찌 구해오면 아 정말 된 놈들이구나 하고 진심으로 친해지고, 이런 내용이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시나리오 작법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조차도 명백하게 정정할 수 있을 정도면 도대체 씨발 뭔 생각으로 겜을 만든거야.


나도 안다. 지브리는 망했다. 아예 스튜디오가 해산됐고, 지금은 계약직으로 마지막 작품 작업을 겨우겨우 진행하는 중이다. 내가 지브리를 보던 추억은 벌써 수십년이나 된 이야기고, 내가 늙은 만큼 추억도 죽은 지 오래다. 그래도 씨발년들아 이건 아니지. 이건 자본주의의 악마다. 추악하고 냄새나는 이 악마가 이미 오래전에 죽고 이젠 썩어 문드러진 내 추억의 무덤을 파헤쳐 그 남은 살거죽을 벗겨 입은 채로 날 소비의 늪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개 같은 새끼들. 진심으로 엿이나 먹으라지.



2019년 3월 12일 화요일

평범의 끝은 걸작2 - <영웅전설 천공의 궤적 sc> (2006년작, 니혼 팔콤)


드디어 끝냈다. 60시간이 넘는 대장정 끝에 엔딩. 전작인 천공의 궤적 fc까지 치면 120시간 이상 플레이한 듯 싶다. 이제 얼추 게임의 요소에 대해 리뷰를 남긴다.

1. 스토리

평범하다. fc에선 주인공들이 '유격사'가 되기 위해 전국의 도시를 돌며 임무를 수행하고, 얼떨결에 몇몇 임무들이 급진파의 쿠데타와 연관되어 있어 국가전복음모를 막아내며 정유격사가 된다. sc에선 fc의 쿠데타에서 급진파 측이 노리던 지하유물이 사실 고대의 아티팩트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며, 이것을 노리는 비밀조직과 결투, 아티팩트를 통해 부활한 고대괴수를 쓰러트리는 이야기다. jrpg가 파판 6~7이후로 꽤 복잡한 스토리를 가지게 되어 이렇게 한두문장으로 정리하는 게 쉽지 않은데, 천공의 궤적은 아주 단순명료하다. 때문에 극적인 부분은 없지만, 비슷하게 단순명료한 스토리라인을 내세우는 킬링타임 액션영화들처럼 무난한 재미가 있다.


2. 전투



(위에서부터 중범위 기술, 대범위 기술, 전범위 기술)

평범하다. 그렇다고 고전적인 바닐라 턴제게임일 뿐인 건 아니다. jrpg를 좀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턴제게임도 나름대로 게임성을 살리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파이널판타지 류는 ATB시스템을 도입해서, 내가 캐릭터의 명령을 고르는 와중에도 시간이 흐르는지라 빠르고 적확한 커맨드 입력이 중요했고, 그란디아 류는 캐릭터에게 명령을 입력하는 순간만 시간이 멈추는지라, 그 멈춘 시간 안에서 상대가 누굴 공격중인가, 누가 피격당하기 직전인가를 보고 알맞는 명령을 내리는 재미가 있었다. 

영웅전설은 캐릭터에게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 까지가 캐릭터의 턴으로 인식되는,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턴제 게임이다. 하지만, 위의 짤 좌측에 캐릭터섬네일이 보이는가? 캐릭터섬네일의 옆에는 해당 턴에 캐릭터에게 붙는 버프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턴뺏기를 통해 해당 버프를 뺏거나, 혹은 적의 버프를 보고 대비할 수 있다. 소소하지만 어려운 전투에서는 꽤 머리를 굴리게 만드는 방식. 

fc에서는 보스급에 가까운 몬스터들도 이런저런 디버프를 먹었었는데, sc로 넘어와 안티디버프 보스들이 늘어났다는 점은 좀 안타까운 사실. 대신 더 치명적인 스킬을 난사하지만 그건 스펙으로 커버할 문제고, 전투 중 머리를 쓸 일은 많이 줄었다. 

맨 윗짤에서 시전되고 있는 중범위 기술이 '에어리얼'인데, 속성마법중 압도적인 마나효율로 게임플레이타임의 70%를 이것만 쓰게된다는 것도 좀 에러. 특히 수/화/지속성 광역기는 해당 속성의 역속성 보스전에서조차 잘 안 쓰게된다. 밸런스 무엇. 


3. 그 외 요소

뭐 낚시라던가, 요리라던가 야리코미 수집요소들이 있는 편이지만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단순히 낚시도감을 채우고, 먹어본 요리목록이 늘어나는 것 만으로는 글쎄? 수집욕이 자극되는 수준은 아니지 않나. 여기선 그냥 무시하고, 게임을 하면서 신경쓰인 이런저런 점들만 짚어보겠다.




첫째로, 정말 수집욕을 자극하는 시스템인 쿼츠-아츠 스킬시스템. 아래짤의 우측에 보이는 게 마법도구인데, 여기에 쿼츠라는 마법구슬을 박아넣으면 스킬인 '아츠'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래짤의 하단을 보면 쿼츠 하나당 올려주는 속성치(elemental value)과 능력치(ep소비 -n% 등)가 존재하는데 윗 짤의 아츠표를 보면서 필요속성치 맞추려고 짱구를 굴리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필드전투가 그다지 재미없는 편인데도, 이 쿼츠를 사기 위해서 노가다를 자처하게 될 정도. 비록 이 시스템은 게임의 메인 전투시스템이요, 야리코미가 아니지만, 플레이어가 뭔가를 하게 만들려면 이정도 재미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은 개떡같은 길찾기. 아니 파판9시절부터 이미 jrpg에서 길찾기로 시간끌기는 배제됐다고 생각했는데, 이 겜은 왕왕 개떡같은 맵을 들고나온다. 본인은 이런 걸 보는 즉시 짜증내며 공략 지도를 켜는 편이지만, 혼자서 끙끙대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꽤나 문제일 듯. 특히 윗 맵의 경우는 층이 모두 계단으로 연결된 게 아니라, 워프게이트로 왔다갔다하는 것이라 도저히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뭐 그래도 전반적으로 아주 어려운 편은 아니었고, 헤매다 보면 언젠간 골인할 정도는 되니 엄청난 단점으로는 꼽고 싶지 않다만, 미니맵을 만들라고 씨-발련들아.



똥내나는 인게임 컷씬. 01년작 파판10도, 아니 00년작 파판9도 이러지는 않았다. 아예 무비컷이 있기도 한데, 그것도 영 별로. 무슨 스케치업으로 그려서 렌더링한듯한 이미지야. 겜 자체가 시대에 역행해서 똥내가 심한 편. 뭐 팔콤 게임이 다 그런 것 같으니 이해할 수 없다면 얌전하게 겜을 접는 게 맞을 듯.


마지막으로 파티편성. 이게 진짜 빅엿이다. 각 챕터 혹은 특정 퀘스트마다 강제로 끌고가야되는 애들이 있어서 주력파티원에 집중할 수가 없고, 또 남는 자리에 항상 끼워다니며 주력으로 길러놔도 몇 챕터씩 자리를 비우는 애들이 천지삐까리라 개빡치지 않을 수가 없음. 티타년 벽돌됐을때, 클로제년 나랏일보러 간다고 잠수탈때, 올리비에새끼 갑자기 지 나라 돌아가겠다고 빤쓰런할 때. 뒤통수 터지는 줄 알았자너. 심지어 지금 고정팀원인 저 초록머리 남캐도 중간에 몇챕터 잠수탄다. 진짜 믿을 놈은 진 뿐이다. 킹 갓 빛 진.


4. 마치며

기존에 볼륨이 상당한 게임을 하고도 리뷰는 가볍게밖에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한 번 길게 써봤다. 불평불만도 많지만, 요약하자면 후기를 길게 지낄 정도로 재밌긴 하다는 것. 분명 평범한 게임인데 어째서인지 빠져들어서 수십시간을 달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유 노 더 리전드 오브 히어로즈? 
츄라이츄라이.







(근데 솔직히 온천씬은 일러스트가 따로 있어야지 팔콤 개년들아)


2019년 3월 5일 화요일

못 알아듣고 보니 무섭다 - <빅 쇼트> (2015년작, 아담 맥케이 감독/크리스천 베일, 브래드 피트 등 주연)


어느 날, 빅데이터 관측을 통한 추론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크리스천 베일. 역배팅을 위한 그의 보고서가 이곳저곳으로 돌며 몇 명의 인물들이 같은 방향으로 투자를 하게 되는데, 분명히 주택담보대출상품의 환급률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품의 가격은 요지부동일 뿐이다. 왜 내실은 완전히 망한 상품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내 경제학적 지식을 막 과시하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 근데 쥐뿔이 아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무섭다. 포스터의 인물들을 포함한 영화상 등장인물의 대다수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견하고 역배팅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사태가 꽝 터지고 신나게, 혹은 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돈을 쓸어모으는 그들의 모습에 집중한 영화인가? 그렇지는 않다. 역사적 사실로서 완벽하게 예견할 수 있는 그들의 대성공에도 의외로 고비는 있었다. 바로 그 부분에 영화는 포인트를 준다.

이런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아무리 전개되도 관객이 알아쳐먹질 못한다는 데 있다. 관객은 기본적으로 일자무식이다. ISDA, CDO같은 약어들이 튀어나오고 그래프가 그려지고 수치를 아무리 나불대도 저게 왜 발단이요 위기인지 모른다. 그래서 영화가 선택한 방법이 메타픽션이다. 등장인물들이 어려운 단어로 대화하던 중에 갑자기 관객들을 정면으로 보고 자기 말을 설명하질 않나, 전혀 뜬금없이 거품목욕중인 마고 로비(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 퀸 역으로 유명한 배우)의 욕실로 화면을 돌리더니 목욕중인 그대로 해설을 시작하기도 한다. 굉장히 키치한 방식인데 귀에 쏙쏙 들이박힌다. 영화는 빠른 호흡과 재기발랄한 설명충 편집으로 내달리고, 관객은 무식한 머리통으로 그걸 따라가다가 관성처럼 결말에 쳐박히고는 머리가 얼얼해진다.

그러면 난 영화를 이해했을까? 솔직하게 전혀 못했다. 얼개는 알겠는데 정확한 속사정은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바로 내일 정확히 똑같은 일을 현실에서 겪고, 돈이며 집이며 싹 다 날린 다음 길거리에 나앉고도 뭐가 문제인지 모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거대한 무지의 결정체 같은 인간이다. 못 알아듣고 보니 무섭다.

그러니까 와타치는 그냥 콘페이토를 원하는 테치.

2019년 3월 4일 월요일

추하게 안녕 -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2016년작, 폴 W. S 앤더슨 감독/ 밀라 요보비치 주연)

시놉시스 필요함...?

이 시리즈가 끝나다니 참. 감회가 새롭다. 솔직히 난 바이오하자드가 영화화된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며, 좋아하는 장르에 꾸준히 흥행하는 시리즈물이 존재하는 것도 좋았다. 영화만큼 게임도 좋아하는지라 게임에서나 볼 법한 크리쳐들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 역시 나는 참 좋았었다. 그렇게 무턱대고 좋아했더니 영화가 너무 추해져버렸다. 

솔직히 그렇긴 하지. 좆대로 막 찍는데도 존나 흥행하는데 뭐하러 공들여 찍겠는가. 다 벌어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랑했다 씨발련아.

인터넷을 잠깐만 뒤져봐도 온갖 혹평이 넘쳐난다. 두서없는 전개, 좆까버린 기존 설정, 쌈마이한 CG, 더 이상 만들 것도 없었는지 등장 크리쳐는 대충 기존 모델링 돌려막기로 땜빵. 다 진실이다. 거기에 이제 요보비치도 늙어서 쳐졌는지 바디라인 훤히 드러내며 매 작품마다 찐하게 나왔던 팬서비스도 이번 편엔 없다. 그럼 뭘 보라고 만든 영환데요? 요보비치가 늙은 건 좀 슬프다. 길죽길죽하니 참 선이 살아있는 배우였는데. <블루 라군2>를 보았는가? 근데 나도 이제 늙어서 별 감흥 없어. 말이 삼천포로 빠졌는데, 대충 마무리하자면 슬슬 동작수행도 힘들어졌는지 이준기와 싸우는 액션씬은 거의 콜라주 기법의 경지에 다다랐다. 컷이 너무 잘아서 대충 자세만 잡고 부위별 사진 찍어 이어붙인 느낌이야. 그냥 손발만 휙휙 뻗어도 우아했던 밀라는 이제 없다.

안녕 라쿤쟝... 그래도 그 동안 즐거웠어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쓰레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