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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6일 일요일

미완성작 - <벽력십걸> (1985년작, 유가량 감독/ 소후, 유가휘 주연)


또 소림사 영화. 선풍기를 틀고 냉국수를 먹으면서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내가 좀 더 잘 살았으면, 냉냉한 마루에 시원하게 앉아서 탁상 위에 음식을 차리고 영화를 볼 텐데. 그러면 정말 살맛나는 여름이 될 텐데.

구 명나라의 한족으로서 청의 만주족에게 핍박받던 방세옥이 온갖 말썽을 일으키고, 소림사로 숨어들어갔다가 다시 또 만주족과 대적하게 된다는 이야기. 유가량 표 영화답게 스토리엔 별 관심이 없고 액션연출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영화다. 

이 당시의 중국영화들은 어지간해선 다 제 값을 했다. 배우들이 전부 서커스 수준의 스턴트가 가능한, 세계에 다시 없을 세대의 사람들이니까. 그냥 그들이 핑핑 돌고 주먹질을 하는 모습만 카메라에 대충 담아도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이 영화는 스토리에 너무 소홀했다. 어느 정도냐면,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메인 악역이 존재하질 않는다. 방세옥은 계속 다른 만주인을 만나고, 그들을 쓰러트린다. 그렇다고 방세옥이 만주인을 쓰러트리는 데에만 미쳐있는 일종의 복수귀인 것도 아니다. 사실상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사건전개는 이제 와선 따라가기 좀 버겁다.

제대로 된 악당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인데. 어째서 그것을 몰랐을까.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추억 속 배우들이 삼절편을 휘두르며 신명나게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그것만으로 좋다. 아버지가 아무런 맛도 없는 연근을 유독 좋아하시며 질겅질겅 씹으시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것은 노스텔지어의 맛이다.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내가 이걸 왜 봤지? - <극장판 논논비요리 vacation> (2018년작, 카와츠라 신야 감독/ 코이와이 코토리 등 CV)


평안한 치유계 만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예전엔 재미없었는데, 세상이 힘든 모양이다. <논논비요리>도 그런 치유계 만화중 하나다. 난 단행본으로 보고, 애니메이션은 관심 없었지만, 극장판이 나왔다는 소식에 뭔가 싶어서 한 번 봐봤다.

결론은 별로. 극장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성의없는 프레임구성과 딱딱한 동작, 아무런 새로움 없이 단행본에서 그대로 가져온 에피소드. 사실상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밖에 없는, 광팬들을 위한 팬서비스 수준의 영화다. 

시간만 날렸다.


불쾌한 골짜기의 비린내 - <기적의 분식집> (2018년작, 테일즈샵)


테일즈샵에서 스팀으로 발매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솔직히 내 미연시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이 게임을 택한 이유는 딱 두 가지. 테일즈샵에서 기존에 나왔던 게임 중 한 개를 재밌게 플레이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요, 그날따라 별 움직임 없이 느긋하게 텍스트를 넘기는 게임이 끌렸기 때문이다. 결과는 미묘했다. 

나도 수십년의 인생을 씹덕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1세대 미소녀 뽕빨물들도 재밌게 읽었고, 뒷세대의 뽕빨물도 그리 자주 접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보면 나쁘지 않았던 느낌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장르에 대한 감흥은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아예 공감을 못 할 정도로 폭싹 늙거나 장르에 무지하지는 않다 이말이다.

근데 이 게임은 씹덕내가 아닌 뭔가가 섞였다. 이건 비린내다. 작중 화자인 '나'와 플레이어인 '나'사이의 간극에서 새어나오는 비린내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당최 작중 화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 말주변으로는 이 기묘하고도 불쾌한 골짜기의 감각을 딱 집어 분석할 수가 없다. 내가 이 게임을 하며 느낀 감각을 뭉뚱그려 표현하겠다. 이 게임은 여자애들이 '내가 남자들 좋아할만한 겜을 만들어봤어 꺄악꺄악'하고 자기들끼리 돌려 해보는 게임을 미연시라는 말에 낚여서 '찐'인 내가 잡아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내가 뭐 오타쿠 오프라인 모임같은걸 하고있는 것도 아니고, 근래의 씹덕문화를 잘 모르는건 사실이다만, 요즘은 씹덕질이라는게 좀 유니섹슈얼해졌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딱 이런 느낌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겠고,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2019년 5월 24일 금요일

난 이 게임을 하기엔 너무 늙었서 - <사이터스2> (2018년작, 레이아크)


개인적으로 ez2dj같은 리듬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려오는 노트를 보고, 해당 노트에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세상이 발전하면서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리듬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터치스크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리듬히어로>같은 게임들은 나도 꽤 재밌게 즐겼다.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터치스크린이다. 그리고 세대가 거듭할수록 더 와이드한 화면을 지원했다. 그러니 이런 리듬게임도 나올 때가 됐다. 그렇게 나온 게 <사이터스>시리즈다.



게임은 아주 직관적이면서 역동적으로 리듬에 따라 터치할 곳을 표시해준다. 이런 것도 '노트'라고 말하는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노트를 따라 바쁘게 손을 놀리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한동안 빠져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모든 곡을 전부 A이상으로 만들어놨다. 하지만 거기까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흔히 휴대폰을 다루듯 양 손으로 파지한 채 엄지손가락으로만 플레이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한 번에 여러 곳에서 노트가 튀어나오다 보니 엄청난 핸드스피드를 가진 고수가 아니면 엄지만으로 커버할 수가 없다. 이 말은, 돌아다니면서 혹은 잠들기 전 침대에서 등 흔히 핸드폰 게임을 하던 시간에 이 게임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폰게임을 각 잡고 하는 사람은, 있기야 있겠지만서도 많지는 않지... 그나마도 거의 컴퓨터로 돌리고.

둘째는 눈이 아프다는 것. 위에도 언급했지만, 폰게임을 각잡고 하는 사람들은 보통 컴퓨터 에뮬레이터를 사용한다. 왜 그렇겠는가. 작은 화면을 오래 보면 눈이 침침해지기 때문이다. 아마 늙었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끽해야 두세 판 플레이하면 뻑뻑한 눈을 비비며 게임을 끄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계속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을 지우게 되더라.


아마, 언젠가 큰 태블릿이라도 사게 된다면 한 번쯤 해볼 수 있을까. 그땐 또 목이나 허리, 혹은 어딘가가 아플까. 정말 재밌는 게임인데, 신체적 조건 미달로 게임을 접은 적은 또 처음이네. 무척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은 흐르고, 나도 늙었지. 젊은 게임은 젊은이들에게 양보해야겠다.

2019년 5월 21일 화요일

똥 - <비밀스러운 초대> (2015년작, 카린 쿠사마 감독, 로건 마셜그린 주연)


아들이 죽고 그 여파로 이혼한 전 부인의 집에 초대받은 주인공. 묵은 갈등을 해결하려 초대에 응하지만, 파티의 꼬라지가 심상치가 않다.

<업그레이드> 혹은 <프로메테우스>에서 맨 처음 감염당하는 남자 역으로 알려진 로건 마셜그린 주연의 영화. 파티에서 쓸데없이 무거운 이야기들을 꺼내며 분위기를 흐리는 전 부인과, 아직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주인공, 또 그들을 어떻게든 위로하려고 분위기를 띄우는 친구들의 악전고투가 어우러지는 불협화음이 영화의 맛... 이라고는 하는데 그냥 불협화음으로 남아버린다.

사실 전 부인도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다같이 자살하려는 마인드로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이라는 반전에는 별다른 놀라움도, 카타르시스도 없다. 말로 설명하기가 힘드네. 거 뭐 있지 않은가. 영화 내내 존나 시덥잖은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버려서 쓸 내용도 없는 그런 영화. 이 영화가 그렇다.

뿌다다닷

아앗 또 감금당하고 싶다 - <제로 이스케이프: 시간의 딜레마> (2016년작, 스파이크 춘 소프트)



제로 이스케이프(국내명 극한탈출) 트릴로지의 3번째 작품. 제로이스케이프 2에서 말했듯 꽤 과거에 1을 플레이했고, 근래에 스팀에서 2,3을 세일했기에 구매했다.

아쉽게도 1,2편의 판매량이 모두 부진했는지, 3편의 제작비가 상당히 부족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플레이타임이 전작의 반 정도로 확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실한 방탈출파트와 흡인력 넘치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기에, 이럴때만큼은 자본의 논리가 야속할 따름이다. 물론 여전히 해볼 가치가 넘치는 작품이며, 분량을 제외하면 시리즈의 대단원으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사실 방탈출 비주얼노벨이 20시간 중반대의 플레이타임을 보여주는 게 까일 만한 분량은 결코 아니지만, 전작들이 4~50시간의 플탐을 보장했던 것에 비하면 짧긴 하니까...

3편의 스토리는 확률론에 기반하여 진행된다. 몬티 홀 문제를 비롯하여 유명한 확률론 담론들이 게임 내내 플레이어의 머리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어쨋든 상업용 게임이고, 결코 과중하지는 않으니 평소 싫어했던 수학을 스파이스로 즐기는 새로운 감각을 느껴보시라.




- 이번엔 화성기지 모의실험에 참가한 9명의 인물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되고, 3개의 팀으로 나뉘어 3개의 구역에 각각 감금된다. 게임은 이 3팀 중 하나를 선택해서 특정 장면부터 플레이하게 되는데, 이 방식이 좋게 말하면 새롭고 나쁘게 말하면 난잡할 수 있다. 설정상 팀원들은 한 방을 탈출하는 데 최대 90분을 소비하고, 탈출에 성공하면 이전 90분의 기억이 지워진 채로 다음 방에 옮겨지는 식이기에 플레이어도 지금이 어디쯤인지,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임의의 지점에서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 그렇게 팀을 고르고, 임의의 지점에서 시작하는 방탈출을 하나씩 클리어하다 보면 루트맵에 이렇게 그간 해왔던 내용들이 시간순으로 정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소 난잡할 수는 있으나, 후반부 전개에 반드시 필요했던 내용이고, 굳이 한 장면을 클리어할 때마다 루트맵으로 시간대를 확인하지 않아도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한 일들을 스스로 이해하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 특이사항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들, 혹은 평범한 텍스트 어드벤처 작품들에서 기용하는 '텍스트박스'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방탈출을 끝내고 스토리가 진행되는 구간은 전부 컷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을 위해 문장 단위로 빨리감기 기능이 있어서 컷신이 나올 때마다 굳이 풀 씬을 다 봐야하는 것은 아니나, 느리게 보는 기능은 없는지라 영자막 혹은 일어음성 중 하나에 상당히 익숙한 게 아닌이상 언어의 압박이 꽤 있을 것이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텍스트를 넘기지 않은 채로 사전같은걸 뒤져보는 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 방탈출 파트. 전작보다 조금 더 그래픽이 나아진 것 같지만, 큰 차이는 없다. 퍼즐의 난이도는 역시 적절. 스트레스 없이 딱 즐겁게 퍼즐을 풀고 방탈출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포스터에 사용되었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올린다. 철제 고문의자의 차가운 느낌과 붉은색 니트에서 오는 따듯함의 대비가 끝내주지 않는가? 저런 장면을 마지막으로 죽을 수 있다면 내 인생에 그 어떤 여한도 없으리라.


인생 최고의 감금생활 - <극한탈출 ADV 선인 사망입니다> (zero escape - virtue's last reward, 2012년작, 스파이크 춘 소프트)


극한탈출 3부작 시리즈 중 2부. 1부는 꽤 예전에 플레이해봤고, 2,3부가 17년도 스팀에 등록, 근래에 와서 드디어 세일을 했기 때문에 바로 구매했다. 납치된 채 알 수 없는 곳에서 깨어난 주인공들이 그 곳을 탈출하며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는 꽤나 클리셰적인 설정의 게임이지만, 촘촘한 복선과 떡밥, 그리고 그것을 회수하는 중후반부의 흡인력이 발군이다.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는 양자역학과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담론도 제법 흥미롭다. 당연히 대단한 이론적 합리성같은 걸 추구하려는 게임은 아니니까, 하나의 조미료 정도로 보면 좋을 것이다. 평하자면 훌륭한 조미료 사용이었다 정도일까.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게임은 자유도가 없는 편이 훨씬 좋다. 특히 스토리가 메인인 게임은 더욱 그렇다. 자유도랍시고 아무리 선택지가 많아도 어차피 존재하는 루트의 가짓수는 유한한 것을 뻔히 아는데다가 예전 위쳐3 글에서도 언급했듯 분기가 빽빽할수록 필연적으로 복선 혹은 떡밥이 부실해진다. 단순히 인과성에만 기댄 스토리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도 구닥다리였으니, 스토리를 넣을거면 자유도는 당연히 제한해야 하는 것. 

본 게임은 자유도가 완전히 제한되어 있다. 단순히 선택지가 적은 것 뿐만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오브젝트, 이동할 수 있는 공간 등이 전부 제한된 게임이다. 방탈출을 끝내고 나면 스토리가 진행되며, 선택권 없이 다음 방이 정해진다. 하지만 그래서 좋다. 시나리오는 자유도의 부족에서 올 수 있는 심심함을, 정해진 길을 걸으면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 꾸며놓은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커버한다. 작가들을 얼마나 갈아넣은 것일까. 50시간, 천문학적인 분량의 텍스트로 이루어진 지적 유희의 산책로가 여기에 있다. 걸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50시간의 분량이지만, 단 한번도 템포가 늘어진 적이 없다.



- 다만, 저예산의 축에 속하는 게임인지라 인게임 그래픽은 아쉽다. 차라리 도트 일러스트로 되어있던 1편의 그래픽이 훨씬 낫다고 생각될 정도. 하지만, 3d모델링을 이용하여 몇몇 장면을 컷신으로 연출했으니 아마 제작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 등장인물들의 스탠딩 일러스트 모음. 게임 내에서 일러스트를 볼 일은 거의 없겠지만... 여담으로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사연이 굉장히 흥미롭다. 스토리 루트를 한 개 끝마칠때마다 튀어나오는 골때리는 진실과 반전들은 플레이어의 흥미를 잡아두기에 부족함이 없다.






- 방탈출 파트의 모습. 조사할 수 있는 물건들과 퍼즐로 되어있는, 다소 평이한 형태이다. 하지만 비논리적이지 않은 퍼즐과 적당한 난이도 덕분에 만족도는 높은 편.

.........?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비현실성을 다루는 방법 - <스카이스크래퍼> (2018년작, 로슨 마셜 서버 감독/ 드웨인 존슨 주연)


드웨인 존슨이 시스템 총괄을 맡은 세계 최고층 건물. 하지만 수수께끼의 테러조직이 존슨의 시스템단말기를 날치기하고, 그 단말기를 사용해서 건물의 화재대응시스템을 마비시킨 채 불을 질러버리는데...

솔직히 기본도 못하는 영화다. 사실 재밌을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별로 더 까고 싶지도 않다. 간단히 영화의 비현실성에 대해서만 짚고 끝내련다.

영화는 언제나 비현실적이다. 당장 테러범들이 쓰는 폭탄의 전선들이 깔끔하게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고, 무슨 메뉴얼마냥 특정 색 선만 자르면 정지된다는 식의 유명한 클리셰들부터 비현실 그 자체다. 하지만 이런 클리셰들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반면, 유독 비현실적이라고 까이는 영화들이 있다. 이건 무슨 이유일까.

정답은 룰 설명의 유무에 있다. 비현실적인 요소를 넣고 싶다면, 영화는 반드시 그 비현실성의 기본적인 룰에 대해 관객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면 영화에 나오는 덕트 테이프를 반대방향으로 손에 감고 그 접착력으로 커튼월 바깥쪽을 이동하는 장면. 그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장면같지만, 영화 내에서 덕트테이프의 접착력과 활용성에 대해 알려주는 장면이 따로 존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관객들도 덕트테이프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니까. 조금만 힘을 줘서 된다고 말하면 어어 저게 진짜 되는건가? 싶거든. 그리고 어차피 머리통 비우고 보는 액션영화라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런 단순한 규칙조차 지키지 않아서, 보는 내내 관객들의 머릿속이 물음표로 도배되도록 만들어버린다.

기왕 글을 늘이기 시작한 김에 편집도 한 번 까고 넘어가자. 사건순서를 씨발 대체 어떻게 짠 거야. 다시 예를 들어서, 클라이막스 즈음 주인공이 속수무책으로 불길에 갇혀 아이를 끌어안고 마지막을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당연히 극중 긴장감이 극한에 달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 직전에 미리 탈출한 주인공의 마누라가 단말기로 화재대응시스템 부분을 휙휙 조작하는 장면이 먼저 나온다. 그러면 주인공의 위기가 관객들에게 전달되질 않잖아? 어차피 화재진압기 작동하고 무탈히 빠져나올 걸 다 아는데. 주인공이 마지막 위기일 때 마누라는 최소한 단말기를 탈취하기 위해 건물 외부의 테러범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거나, 혹은 단말기의 오류를 해결하려고 온갖 방법을 짜내다 실패하는 와중이었어야 했다.

덕분에 영화는 액션물로서의 스릴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꽤 빠른 박자의 편집도 이를 커버하지는 못했다. 고로 굳이 볼 가치는 없는 영화다.

영화의 작품성과 별개로, 영화 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팔뚝이 진짜 kia... 영화 내내 배우들 팔뚝만 계속 찍었어도 지금 만들어져있는 결과물보단 훨씬 나았을 것이다.

마지막 여담으로, 이런저런 영화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동양계 배우 바이런 맨. 근데 난 이사람 스트리트 파이터 실사판 시절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가끔 얘 나올때마다 혼자 피식피식 쪼개게 된다. 아래쪽 짤이 스트리트 파이터에 등장한 바이런 맨인데, 류 역을 맡았었음.

솔직히 지금 글 쓰려고 짤 찾으면서도 함박미소를 짓는 중이다. 내 개그취향이 독특한건가. 그래도 나름 노잼영화를 보는 데 하나의 활력소같은 사람이라, 더 자주 등장해줬으면 좋겠다.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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