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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당위성 없는 공포?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단편선> (단편집,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저)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면, 특정 장르의 기원이 되었다는 호평을 듣는 반면 그의 필력 자체는 그다지 볼 게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가볍게 특징을 짚고 넘어가자면 이러하다. 보통의 공포물은 공포의 기원을 밝혀 당위성을 얻는다. 외계에서 온 괴물이라던가,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라던가. 그리고 그들이 먹이사냥 혹은 복수 등의 사유를 가지고 공포의 주체가 된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선 공포 그 자체만 중요할 뿐 그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날 괴물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가 산 채로 사람을 삼키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설명할 수 없는 광경에 놀라 집으로 도망쳐 문을 걸어잠그지만, 괴물은 분명 자신을 보았을 것이며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환각증세에 시달리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여기서 결국 공포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 괴물이 있던 곳으로 찾아가 자신을 내어준다면 완벽한 러브크래프트식 전개 되시겠다.

하지만, 위의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젠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전개방식이다. 그 바리에이션도 꽤 다채롭게 나와있었고, 지금은 심지어 촌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다. 80~90년대 <환상특급>이나 <X파일>, 만화책으로는 이토 준지 등의 시리즈물이 유행할 때가 이 장르의 마지막 전성기 아니었을까.

<인형관의 살인>을 리뷰할 때 적었듯, 클래식이 클래식으로 인정받으려면 단순히 장르를 개척했다는 것 이상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기엔 러브크래프트의 필력은 한참 부족했다. 단편집이라 의도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단편만 묶었을 수도 있겠지만, 책 한 권 12편의 단편을 읽는데도 너무 반복적인 소설의 전개에 지루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른 소설들은 뭐가 나으려나 싶은 호기심도 생기지만, 서울도서관의 러브크래프트 관련 자료가 이 단편집 하나뿐이니 언젠가 먼 미래에 기회가 생기면 해결할 궁금증으로 남겨두자.





형식뿐만 아니라 연출까지 신선한 - <서치> (2018년작, 아니쉬 차간티 감독/ 존 조 주연)


단순히 컴퓨터 화면만으로 진행되는 영화라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서치>는 정말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며 겪는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연출에 녹여냈다. 이를테면 메세지를 보낼 때 자신이 썼던 글을 지우고 다시 보내는 것으로 주인공의 현재 심리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고(당연히 썼다 지운 글이 좀 더 날것의 본심이다.) 오버랩이나 플래시백 없이 창을 여러 개 띄우고 보여주는 것만으로 기존의 연출방식을 대신하는 식이다.

관객의 시선이 엄청나게 좁은 모니터 안에 갇혀있으니, 몰입도 하나는 끝내준다. 기껏해야 화면 한쪽에 띄우는 짤막한 영상이 표현한계인 영화라 마치 스킵버튼을 누르듯 명료한 핵심만 전달하며 내달린다. 1시간 40분 정도의 러닝타임에서 사건이 발생하며 급격하게 긴박해지는 시기가 20분대 초반인데다, 그 호흡을 뒤로 80분동안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 와중에도 모니터를 요리조리 비추며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나중에 한 번 더, 상세히 파볼 가치가 넘친다.

아쉽지만 이런 재기발랄하고 쫄깃한, 근래 보기 드물었던 수작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스토리다. 주인공이 실종된 딸의 노트북을 통해 '검색'만으로 범인을 찾아간다는 스토리라인 때문에, 영화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진실을 결말로 채택해야 했다. 하지만 이 덕분에 매 순간 관객의 예상을 빗겨가며 종횡무진 달리던 영화는 어떤 한계를 넘지 못하고 진부한 결말로 끌려 돌아온다. 조금만 더 고찰했다면 21세기식 스릴러 장르영화의 전환점 역할을 하는 걸작이 탄생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많이 아쉽다. 

정리하자면 무난한 결말이 피눈물나게 아쉬울 정도로 영화적 완성도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간만에 정말 즐겁게 관람했다.





2018년 10월 27일 토요일

좆플릭스 - <밤이 온다> (2018년작, 티모 타잔토 감독/ 이코 우웨이스, 조 타슬림 주연)


격투액션은 언제 재미있는가?

우선 액션을 뒷받침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주인공은 착한 놈이고, 적들은 나쁜 놈이라서 주인공이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전부 죽여버리는 스토리라도. 액션의 스토리는 오히려 명료할수록 관객의 카타르시스가 증대하는 느낌이다. 

둘째는 끝내주는 합과 타격감이 있어야 한다. 전성기 성룡의 영화를 보시라. 진짜 때려도 안 나올 것 같은 타격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합맞춤은 또 어떤가. 취권의 신박한 몸놀림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늘어놓고 나니 격투액션은 단 두가지만 만족시키면 되는구만. 쉽네. 그리고 이 영화는 둘 다 실패했다.

스토리는 난잡하다. 킬러가 여자아이를 죽이려다 동정심을 가지고 조직을 이탈한다는 큰 줄기는 명료하다. 그런데 거기에 영웅본색과 킬 빌을 넣고 스까버린다. 극이 조금 진행되고, 끝까지 설명이 안되는 주인공과 이코 우웨이스의 관계, 뜬금없이 튀어나와서 지 손가락이 잘리면서까지 주인공을 위해 싸우지만 역시 누군지 모르겠는 여자 등등이 설쳐대기 시작하면 내가 뭘 보고 있는건지 정신착란이 올 지경이다.

합과 타격감은 구리다. 이코 우웨이스, 조 타슬림의 출세작 <레이드>를 생각해보자. 그 강렬한 살의, 죽이는 타격감. 눈을 뗄 수 없도록 잘 짜여진 합.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배우들을 가지고 아무것도 구현하지 못했다. 정적인 카메라워킹은 어설픈 촬영각도와 더해져서 오히려 가짜 타격만 부각시키고 있고, 격투의 테크닉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일 뿐이라 그저 지루하다. 심지어 합맞춤도 제대로 안 되어있는지 배우들이 머뭇머뭇거리면서 동작수행을 하는 게 뻔히 보인다.

사실 넷플릭스 자체제작 영화에 만족했던 적이 드물다. <고스트 워>정도일까? <서던 리치>도 딴에는 재밌게 보긴 했다만, 솔직히 감독이 표현하려는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쌈마이한 영화였다. <부시윅>도 넷플릭스 영화였나? 그건 괜찮았던 기억인데. 

'넷플릭스'하다는 신조어를 만드는 건 어떨까.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하며, 싼티난다는 의미로.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죽은 감독의 우울한 디테일 - <맨추리안 캔디데이트> (2004년작, 조나단 드미 감독/덴젤 워싱턴 주연)


개인적으로 무척 우울한 날이다. 아침부터 머리가 무겁고, 부정적인 생각들과 기억들이 머리 속에서 가시질 않는다. 이럴 때면 내 손에 당장 권총이 쥐어져 있던 나날들을 떠올린다. 그렇게나 가까이 있었는데, 어차피 난 용기가 없었다.

불평한들 뭐하랴. 영화를 틀었다. 04년, 이게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까맣게 잊은 채 14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서야 겨우 틀어보는구나.

영화는 디테일로 만들어진다. 감독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배우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눈썹의 작은 움직임조차 눈에 띌 정도로 가까이. 그들의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가 단음계 음악을 보는 듯한 편집으로 엮여 건조하면서도 우울한 영화가 완성된다.

프랭크 시나트라 주연의 62년작에 비해 평가가 낮다. 난 62년작은 보지 못했지만, 얼추 이유는 알 것 같다. 미리 세뇌해놓은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켜 국가를 소유하려 든다는 스토리는 지금에 와선 진부한 느낌이 강하고, 한창 이념대립이 심했을 당시에는 이렇게라도 해서 국가의 방향성을 조작할 당위성이 충분했지만, 04년은 이미 냉전시대가 종식된지 오래였다. 이념이 아닌 자본주의적 논리로 대통령을 조종하려 든다는 04년의 각본은 글쎄, 그렇게까지 설득력이 있지는 않으니까.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감독 조나단 드미는 작년에 죽었다.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의 영화를 보는 것은, 사실 크게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기분이 묘하다. 이는 내가 죽은 다음 이처럼 남길 것이 없음을 걱정하는 감정일까, 아니면 단순히 죽는다는 개념에 대한 두려움일까. 난 왕언장처럼 호사유피 인사유명을 외치며 죽어갈 호걸은 결코 못 될 테니, 아마 후자겠지.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아 만화가 그런 뜻이었어요...? -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 (2017년작, 가게야마 가츠히데 저)


사실 난 서양철학사를 공부한 적이 있다. 다만 철학서를 놓은 지 좀 됐고, 다시 철학사를 한 번 흝고 읽어보고 싶은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입문서를 펼쳤다. 

철학 하면 공자왈 맹자왈 뜬구름 잡는 소리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깊지는 않지만 직접 들여다본 바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논어>를 읽어 보면 공자는 진짜 뜬구름을 잡긴 했다. 그걸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거의 성서해독이랑 비슷한 느낌.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철학의 분야는 논리학과 과학철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논리의 구조와, 후대 과학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하는 과학철학이 뒤얽히는 것을 구경하자면, 역사적인 천재들이 학문에 대해 생각해온 과정을 훔쳐보는 것 같아 굉장히 흥미롭다.

일단 다음은 데카르트의 저서를 빌려올 수 있으면 좋겠다. <제1철학에 관한 성찰>이다. 꽤 인기가 많은 도서이고,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유래 쯤 되는 책이라 예약조차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운이 좋길 바래야지. 

여담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만화처럼 읽히는' 이라는 제목에서 아 이게 삽화가 많이 들어있을 예정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만화처럼 읽힌다'의 의미는 특정 사상을 설명하기 위한 예문을 모두 유명 만화책에서 따오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특정 사상을 설명하다가 해당 사상에 툭툭 츳코미를 던지는데.....????

혹시 자기가 오타쿠인데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입문용으로 읽어보자. 
와 킹덤! 효도 장군! 리비도! PPAP!


<북두의 권> 보셨습니까? 엄.청.재.밌.습.니.다
후후.. 하지만 <사자에상>같은 비유는.. 훗 여러분에겐 너무 버거울지도? (퍽)

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복선회수의 타이밍 -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 (2012년작, 브래드 페이튼 감독/드웨인 존슨, 마이클 케인 주연)


솔직히 영화가 구릴 건 예상했다. 영화의 정확한 정보까지는 찾아보지 않았지만, 아마 저예산의 비디오용 영화 아니었을까? 헐리웃 답지 않게 어눌한 미장센 덕에 세트와 그래픽이 너무 눈에 띄고, 멍청한 캐릭터메이킹과 중학생이 써갈긴 듯한 각본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사실 이게 성인들보다는 영유아를 타게팅한 느낌이 강하기도 해서, 혹평은 여기에서 마치고 가벼운 감상을 적는다. 

영화에는 복선이라는 게 있다. 영화 내적으로 배열된 요소를 활용할 때에는, 미리 그 요소를 보여주고 나서 활용해야지, 활용할 때가 되서 갑자기 그 요소가 튀어나오면 극이 설득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복선은 관객이 해당 요소를 잊어갈 때쯤 활용되어야 재미가 생기는 것이지, 너무 방금 배열된 요소를 바로 활용해버리면 또 복선의 맛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스포일러지만, 영화의 내용을 한 번 배열해보려고 한다. 

1. 주인공이 경찰에게 쫓기는 시퀀스
2. 새아버지가 주인공을 나무라고,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보낸 암호를 위해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설명, 둘이 암호를 풀고 잊혀진 섬의 위치를 알아낸다.
3. 헬기가 추락하며 잊혀진 섬에 도착(표류)한다. 가는 도중 드웨인 존슨이 '도마뱀은 싫다' 언급
4. 대형 도마뱀과의 추격 시퀀스
5. 할아버지를 만나고, 섬의 정체를 알지만 곧 가라앉을 예정인 것도 알게 된다.
6. 노틸러스 호의 위치 지도를 찾는다.
7. 지도에 표기된 위치를 향해 가는 중 절벽을 오르기 위해 거대 꿀벌에 탑승, 뒤로 거미가 비친다.
8. 새의 습격, 거미줄 쪽으로 유인하여 새를 무력화한다.
7. 물 속 터널을 통해 노틸러스 호로 가는 중 전기뱀장어에게 쫓긴다.
8. 노틸러스 호의 배터리가 다운된 것을 발견, 전기뱀장어를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한다.
9. 탈출 후 해피엔딩.

같은 색으로 쓰여진 시퀀스들은 복선과 그 회수를 의미한다. 척 봐도 둘이 너무 붙어있다. 90분의 가벼운 영화에 많은 신경을 쓰기 어려웠겠지만, 최소한 저 파트들을 떼어놓기만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 1번 시퀀스는 영화 진행상 전혀 쓸모가 없다. 3번과 4번 복선 및 그 회수도 드웨인 존슨이 도마뱀을 싫어하던 말던 굳이 튀어나올 이유가 없었으니 역시 삭제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복선과 그 회수를 좀 떼어놓으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1. 경찰에게 잡혀있는 주인공을 새아버지가 회수하며 할아버지와 암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합심, 잊혀진 섬의 위치를 알아낸다. 
2. 헬기가 추락하여 표류하는 중, 물 속에서 전기뱀장어와 관련된 헤프닝을 겪고 잊혀진 섬에 표류한다.
3. 거대거미에 관한 헤프닝 중 할아버지를 만나고 섬의 정체를 듣지만 곧 섬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4. 노틸러스 호의 위치 지도 확보
5. 꿀벌에 탑승하여 새에 쫓기다가 거미 지역을 생각해내고, 거미줄을 통해 새를 무력화. 
6. 노틸러스 호로 들어가지만 배터리가 다운된 것을 발견, 전기뱀장어를 생각해내고 그를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한다. 
7. 탈출 후 해피엔딩.

각 시퀀스들에 조금 더 힘을 준다면 90분에 알맞는 명료한 각본이 나왔을텐데. 뭐 대상 관객의 연령대가 낮아서 복선과 복선 사이가 너무 멀면 문제일거라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당장 어릴 때 본 명작영화들 - 쥬라기 공원이라던가, 쥬만지라던가 - 이 충분히 영리한 방식으로 복선을 뿌리고 회수하면서도 우리의 추억을 찬란하게 수놓았던 것을 생각하면 글쎼다. 영화가 어린이를 너무 무르게 봤구만.

어린이라고 무시하시나요?





2018년 10월 19일 금요일

똥내나는 소설의 특성



페이지 하나 할애해서 등장인물 설정설명해놓음.

소설 내에서 인물들 설명을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하지 못했거나, 할 자신이 없었거나, 아니면 정상적으로 소설을 써도 인물설정을 못알아쳐먹을 저능아들을 대상으로 한 개씹덕 소설이거나. 내가 본 모든 경우는 이 세가지중 하나에 해당됐다.

씨-벌 어떻게 이번주에 고른 5권이 싹다 지뢰작이야...!

오타쿠의 망상 속 - <해결사> (2007년작, 우미노 아오 저)


쓸데없는 허세, 과도한 주인공 보정, 유치찬란한 대사들. 
'방심하면 실수를 부른다!' '절대 흥분하지 마라!'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라!'
커버 문구부터 한숨이 푹푹 나온다. 

똥인걸 알면서도 왜 빌려봤냐면, 시놉시스가 특유의 일본식 스릴러물이 아니었거든... 숨겨진 과거가 있는 남자가 전원생활을 즐기던 중 아내가 살해당하면서 복수의 날을 간다. 묘하게 미제소설/영화들의 냄새가 나는 일본산 스릴러라니 한번쯤 읽어보는 게 어떨가 싶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여자는 발에 채이는 돌멩이 수준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와 불혹의 나이에도 풍기는 진한 남성미로 하렘이 끊이질 않고, 남자 등장인물들은 무조건 주인공의 리더-십에 감화되어 소름끼치는 우정의 대사들을 읊어대는, 이건 미스터리나 스릴러 따위가 아니다. 이건 그냥 뽕빨물이다. 이딴 게 신인상이라니 미스터리 장르문학의 수준은 어디까지 떨어진 것인가?

왜 라이트노벨이 그렇게 잘 팔리는지 알겠다. 기존 장르문학이 이정도로 뒤져버렸는데 거따 대고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같은 갓띵작들을 던져대면 독자들이 엏떻계 현혹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정확히 이런 느낌의 소설이다




2018년 10월 18일 목요일

틀따라닥닥 틀틀딱 - <인형관의 살인> (1989년작, 아야츠지 유키토 저)


모든 떡밥이 전부 주인공의 다중인격장애로 설명되고 끝나버리는 그때 그시절 추억의 미스터리스릴러 양산형 반전공식. 지금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시시껄렁하다. 

그 때 그 저화질 브라운관 티비의 향수가, 방 한쪽 구석 눅눅하게 얼룩진 곰팡이의 냄새가, 처음으로 산 비디오테크에 환호하며 지직거리는 비디오방 발 빨간띠지 복사비디오를 틀어 온 가족이 모여 보던 아련한 추억이 슬슬 하나둘씩 주름이 생기는 내 눈가를 적신다. 

길을 가다보면 투명한 통유리 출입면에 잔뜩 걸려있던 포스터들이, 삼단 책장에 빼곡히 들어차있던 만화책들이, 대표작이랍시고 거치대에 몇 개씩 세워져있던 최신 비디오들이, 주인 아저씨의 눈을 피해 구석에서 몰래 만화책을 뽑아 읽던 내 모습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그립다.

다른 말로 하면, 재미없는 구세대 소설이라는 거다. 최소한 개성이라도 탁월하면 클래식으로 인정받을텐데, 그렇지도 못하다.

틀틀따리,,,,틀틀따,,,,,



2018년 10월 17일 수요일

사관장2라고 써줬으면 안됐었니? - <백사당> (2003년작, 미쓰다 신조 저)


내가 서울도서관에서 빌렸을 땐 아래와 같은 띠지는 없었는데.
'반드시 「사관장」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아 좀 시리즈물은 친절하게 1권 2권 표기 좀 해주면 안되나?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 설명이 부족하다 싶더니 아니나다를까 전작이 있었더랬다. 울고싶은 기분이다. 

얼추 전편 <사관장>의 설명을 읽고 <백사당>을 설명하자면, 누군가가 자신의 괴이한 경험을 소설로 풀어낸 <사관장>이라는 원고가 있고, <백사당>의 주인공은 그 원고를 읽고 엇비슷한 괴현상에 시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사관장>을 먼저 읽지 않으면 <백사당>에서 원고에 대해 제기하는 수많은 의문들과 그에 인한 스토리의 진행을 이해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고, 또 <백사당>이 <사관장>에 그렇게까지 의존하고 있는 속편은 아닌 것 같다는 점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글쎄다. 너무 고전적이다. 괴담의 무서움은 무지(無知)에서 온다. 그림에서는 시각적인, 영화에선 점프스케어나 사각앵글 등의 트릭부터 청각적인 부분까지 관객의 무지함을 건드릴 수 있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극의 진행으로 정직하게 공포를 우려내야 하는데, 말이 쉽지 기껏해야 90년대 <무서운게 짱 좋아>시리즈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 유명한 스티븐 킹의 소설도 개인적으로 무섭다기 보단 흥미로운 수준에 그쳤다고 생각한다. 에드거 앨런 포 쯤 되면 진짜 기괴하고 몽환적인 무언가가 나오는데, 소설로 이 정도를 일궈내려면 작가가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며 알콜중독으로 살다가 요절하는 인생 급은 되어야 하나보다. 

괴기현상이랍시고 묘사되는 이야기가 등을 돌리고 있다가 천천히 돌아보는 시커면 형체, 정기를 빨아먹는 요부,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아아아아'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체모를 목소리'. 이것들은 그래, 어떻게 조합해도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소재들이다.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다.

추가로, <사관장>의 특정 사건에 대한 의문들을 현실적으로 풀어가는 추리극의 장르도 일정부분 표방하고 있는데, 위에 설명한 사정 탓도 있겠지만 역시 별로 흥미롭진 못하다.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음양사의 감탄스러운 입담 - <무당거미의 이치> (1996년작, 교고쿠 나쓰히코 저)


우선 <광골의 꿈>에 이어 같은 작가의 책을 연속으로 읽는다는 것은 실수였다. 아무리 작가주의적이라도 촬영이나 각본 등 기본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섞이는 영화와는 달리 책이라는 건 완전히 작가 개인의 개성이 그대로 반영되니까. 작가 쪽에서 소설의 색을 달리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는 한 동일작가의 책을 연속으로 읽는 것은 마치 동어반복으로 가득한 문장을 읽는 것과 같다. 

하지만 책은 대단하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그에 걸린 먹잇감들은 제각각의 방향으로 몸부림치며 사건을 일으킨다. 이 몸부림으로 빚어진 복잡성을 하나씩 떼어내는 것이 소설의 주된 전개인데, 사건이 꽤나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납득하게 만드는 작가의 언변이 뛰어나다. 그리고 결말부, 사건의 의미없는 복잡함을 배제하고 본 거미줄의 형태는 독자에게 묘한 탈력감, 그리고 감탄을 자아낸다.

등장인물의 사상, 성격, 가치관을 한참 상회해버리는 사건의 진상들,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문화학적으로 해체해 '당연한 일'로 만들어버리는 음양사 추젠지 아키히코의 이번 이야기는 감히 필독서라 칭해도 문제없을 듯하다.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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