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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각본가가 찐알못 인싸새1끼임에 틀림없는 - <크로니클> (2012년작, 조쉬 트랭크 감독/데인 드한 주연)


영화는 얼굴이 무려 데인 드한인 찐따 주인공과 나름 인싸인 사촌, 그리고 씹인싸 흑인친구 3명이 우연한 기회로 초능력을 얻고, 점점 각성한 끝에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파운드푸티지 비슷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아키라>와의 비교가 많던데, 개인적으로 아키라는 보다 재미없어서 때려치웠으니 던져놓고, 영화는 꽤 재밌다. 특히 80분이라는 겸손한 러닝타임이 대견한 편. 쓸데없이 끼워넣어진 화면이 전혀 없다.

스토리를 평가하자면 막 갓띵작이라고 빨아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아버지가 주인공을 학대하는 장면, 양아치들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장면들이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하다. 주인공이 결말부에서 '약육강식'을 들먹이며 폭주하는 것도 중간에 무척이나 형식적으로 삽입된, 초능력으로 벌레를 죽여보는 장면만을 근거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얼마나 겉핥기식 접근인가.

나는 화가 난다. 초능력으로 조종한다는 설정으로, 파운드푸티지임에도 굉장히 안정적인 캠 화면, 흥미로운 전개, 볼만한 액션 등 수작으로서 많은 부분을 갖춘 영화지만, 굳이 깊이 파고들 게 아니면 스토리 상의 결점도 크지 않은 영화지만, 역시 화가 난다.

영화의 모든 문제는 각본가가 '찐알못'이라는 데에 있다. 데인 드한은 단순히 '맞았을'뿐, 그 이외에 정신적인 데미지라고는 고작 무기력한 아버지가 자기를 어머니의 사망원인으로 몰아가는 것 뿐이다. 찐따는 그런 데에서 화가 나는 게 아니야. 찐따가 얼마나 감성적인가. 아버지가 직업도 잃고 힘드시니까 나도 힘들지만 그 정도는 참고 산다. 찐따들의 수치심 리미트는 그렇게 낮게 책정되어있지 않다. 아버지가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어머니가 드실 약을 사오라고 돈을 쥐어줬는데, 학교에서 묘하게 친한척하던 양아치가 주인공의 주머니에 약값이 있는 걸 보고 빼앗는 바람에 어머니가 죽을 위기에 처하고 아버지는 그걸 내 탓으로 몰아간다. 요정도 되면 슬슬 찐따의 마음에도 빵꾸가 뚫리겠지.

<캐리>라는 영화가 있었다. <미션 임파서블>로 유명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76년작. 내용은 <크로니클>과 같이 초능력자 찐따 주인공이 파멸하는 과정. 하지만 주연 시시 스페이식은 절세미남 데인 드한과는 달리 몰골부터 흉하게 생겼고, 영화는 단체 샤워 중 갑자기 터진 초경으로 피가 쏟아지는 주인공과, 다른 여학생들이 그걸 놀리고 멸시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주인공은 그런 와중에도 교사에게 안겨 떨며 울고있을 뿐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한다. 그래 이게 찐따다. 찐따는 성질머리가 없다. 계속 당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내가 당해야되는 이유를 만들고 상황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자신의 어딘가가 잘못되어있기 때문에 - 영화<캐리>에서는 부모님이 주인공의 능력을 '악마의 힘'으로 규정하고 나쁜 것으로 몰아갔다 - 지금 이렇게 당하는 것이라고 계속 자해한다. 결국 자해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 오면, 초능력이 없는 현실의 찐따들은 그냥 삶을 포기하고 방구석으로 기어들어가던가, 조금 용기있는 놈들은 스스로 죽어버리는 것이다.

글이 길어졌다. 영화는 그럭저럭 재밌게 봤는데, 그들이 논하는 찐따의 가벼움에 화가 좀 났나보다. 이봐, '찐따'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가벼운 개념이 아니라구....? 일평생 찐따로 살아온 글쓴이가 보증한다.




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게이고는 어쨋든 재미가 있긴 함 - <동급생> (1993년작, 히가시노 게이고 저)



어느날, 임신한 채 산부인과를 서성이던 여학생이 차로에 뛰어들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여학생과 원나잇을 즐긴 주인공 니시하라. 사건 당일 여학생과 같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여교사에게 진실을 요구하던 중, 학교에서 제2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는데.

소설은 주인공 니시하라가 자신의 용의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면묘사와 학생의 눈으로 본, 그래서 더욱 진위를 알 수 없는 경찰들의 수사진행을 병행하여 보여준다. 그렇게 학생이 이해한 자신의 입장과 경찰의 수사정황이 어떻게 오해와 마찰을 빚어내는지가 작품의 포인트.

여러 종류의 추리극을 보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말하자면 정통파다. 관객에게 최대한의 정보를 던져주면서 주요한 부위를 숨기거나 교묘하게 관객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고, 나중에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사건의 진상을 짜잔 하고 내보여주는 식. 무엇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인물들과 독자들이 나름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추리'의 본질적인 부분이 살아있는 것이 좋다. 단순히 충격적인 진상 혹은 자극적인 전개를 위주로 마치 스릴러 영화의 각본같은 느낌을 주는 다수의 소설들과는 차별적인 부분이다.

다만 결말부는 허무하다. 동기에 비해 터무니없는 짓들을 벌이고 다닌 사람들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감성적으로 다가가기엔 좀 너무 음, 어, 그렇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임신한 여학생 사망사건의 결말도, 그에 의한 갈등관계도 좀처럼 말끔하지 못하다. 어쨋든 우리 모두 잘못이 있으니까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건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아니 장르물이면 장르물답게 나쁜놈 좋은놈 딱딱 갈라놓고 나쁜놈은 죽이고 좋은놈은 희생시키거나 살려야될거 아녀. 이 양반 참 갑갑해.

스포일러를 몇 개 하면서 소개하거나 비평하고 싶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읽을 만한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패스한다. 재밌고 술술 잘 읽힌다. 쓸모없는 인생의 주말 오후가 뚝딱.

주지육림 하렘마스터 니시하라 엔딩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껄끄럽다고 대충 코미디로 얼버무리지 마라 - <토르: 라그나로크> (2017년작,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크리스 햄스워스, 마크 러팔로 주연)


전작 <토르: 다크 월드>에서 사망한 듯 보였던 오딘은 사실 지구에 살아있었고, 이런 오딘의 생명이 끝나자 그것을 알아챈 오딘의 맏딸이자 인간(?)병기 헬라가 대대적인 아스가르드 침략을 시작하는데.

영화는 액션보다는 코미디에 치중한다. 나쁘지 않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거의 모든 코미디가 진지한 장면을 끊고 맥빠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실행되다 보니 작품을 끌고 갈 스토리가 죽어버린다. 이를테면 <총알탄 사나이>를 보는 느낌이다. 레슬리 닐슨이 언제 스토리의 맥락으로 웃기던가? 아니, 우리는 오로지 기똥찬 상황설정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헤프닝에 웃는다.

좋아, <총알탄 사나이>이야기를 꺼냈으니 조금 더 이 작품과 비교하자. 닐슨의 코미디가 엄청나게 무겁고 진중한 스토리를 중심축으로 삼았던가? 물론 패러디는 하지, 하지만 결과적으론 아니다. 악당은 멍청하고, 닐슨은 더 멍청하고, 옆에 있는 사람은 더더욱 멍청한데 어쨋든 왠지 사건은 흘러가기에 우린 배꼽을 잡고 웃어제끼는 것이다. 하지만 <토르: 라그나로크>는 그렇지 못했다. 헬라가 묠니르를 부숴버리고, 당장 아스가르드로 날아가서 그 곳의 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뒤 결과적으로는 아스가르드에 대폭발을 일으킨다. 가볍게 웃기엔 너무 무거운 소재다.

아마 제작진들도 이런 걸 염두에 뒀을 것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2시간 중 1시간 반 가까이를 토르 일행이 헬라를 막기 위해 아스가르드에 돌아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활용한다. 왜냐면 그건 가벼워도 되니까. 반면 헬라가 아스가르드 주민, 군대를 학살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사실 헬라의 분량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 20분도 안나올걸. 난 영화를 보며 아스가르드라는 세계엔 주민이 대충 이삼백명밖에 없나보다 싶었다. 그만큼 영화는 무게감도 없고 현실감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별로다. 그래픽의 과잉으로 깃털처럼 가볍기만 한 액션씬도 스토리의 문제를 가중시킨다.

결국 나올만한 반응은 두가지다.
1. 이게 뭐야
2. 아니 웃기자고 만든 영화가 웃기면 됐지 뭘 더 바라냐.

난 딱히 유머코드가 안 맞았는데, 또 맞는 사람들은 재밌게 볼 수 있을지도.


영화를 보는데 토르가 딱 위험한 순간에 시간이 되돌아가면서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거임. 그때 갑자기 샌즈가 튀어나오는데 사실 개꿀잼 몰카였던거임. 와! 샌즈! 파피루스! PPAP~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8년 11월 21일 수요일

퇴물... 아! 옛날이여! - <스페셜 시큐리티> (2017년작, 알렝 데스로세르 감독/안토니오 반데라스, 밴 킹즐리 주연)


미군 대위 전역자인 안토니오 반데라스. 전역 후 딱히 영화에서 제대로 설명해주진 않지만 아마 정신적인 문제로 1년간 백수생활을 하던 중, 겨우 최저시급 백화점 경비원직을 구한다. 하지만, 첫 출근일의 야간순찰부터 누군가에게 쫓기던 여자애가 백화점으로 도망오는가 하면, 여자애를 받아준 뒤에는 벤 킹슬리가 이끄는 청부업자 집단의 대대적인 습격이 이어진다.

일단 딱히 평가할만한 물건은 아니다. 아니, 물건 자체가 못 되는 영화다. 아마추어 경비원 4명과 도망쳐온 여자아이, 경험이 충만한 전직 군인 한 명이 백화점의 지리를 전술적으로 사용하여 쳐들어오는 상대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인데, 이 간단한 시츄에이션을 가지고도 영화는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위기감 없이 까불거리는 경비원들과, 워키토키 통신도청을 피해 백화점에서 장난감으로 팔던 팬시한 근거리 저주파무전기를 쓴다는 설정은 영화를 괜찮은 발상의 코미디 액션물로 만들어주기 충분한 소재였고, 반데라스와 벤 킹즐리의 검증된 연기력을 활용하면 또 한없이 무거운 액션스릴러가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전역 후 금전적인 문제로 가족과 헤어져있는 반데라스와 가족이 살해당한 채 도망쳐온 여자아이는 감성적인 드라마를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영화는 이 세가지에 전부 실패한다. 경비원들은 첫 번째 경비원의 머리통에 총알이 박히는 순간 전원이 얌전해지면서 캐릭터성을 잃어버리고, 반데라스와 킹즐리에게 부여된 캐릭터는 엑스트라 수준으로 평면적이며 여자아이와 반데라스 및 경비원들간의 드라마는 형성되려다 말아버린다. 그리고 백화점 내의 물건과 지형을 활용해 열악한 장비상황을 역전하는 재미도 사실상 없는 수준.

그냥 정말 저예산에 헐리우드 액션영화 시나리오 프리셋을 대충 씌워서 만든 쌈마이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왜 여기에 무려 반데라스와 킹즐리가 나오고 있는가? <아우토반>이라는 영화에서도 같은 감흥을 느낀 적이 있다. 그때도 킹즐리였어. 상대역은 내 기억에 렉터 박사로 유명한 안소니 홉킨스였던 것 같다.

하아, 내 어린 시절을 수놓은 배우들이, 이제 이런 영화에 나올 만큼 퇴물이 되었구나. 나는 지금 무척 가슴이 아프다. 정말로.

퇴물...가슴아픔...

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각본의 욕심에 매몰되어버린 크리쳐 - <콰이어트 플레이스> (2018년작, 존 크래신스키 감독/ 존 크래신스키, 에밀리 블런트 주연)


작은 소음이라도 났다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소음의 원인을 찢어발기는 괴생명체가 지배하는 세상. 주인공 가족은 수화로 대화하며 가능한 한 조용히 살아가는 방식으로 생존 중이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오고, 귀머거리 딸내미의 반항심이 폭발하는데다 길가던 주인공과 아들내미는 아내를 잃고 멘탈이 나가서 비명을 질러대는 노인을 만나는데...

영화의 대부분을 묵음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관객들도 소리에 민감해지게 만든다는 영화의 컨셉은 좋았다. 오프닝 씬 이후 처음으로 다시 소리가 났을 때 주인공들과 같이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경험은 새로웠으니까. 

상황을 꼬아놓는 실력도 좋다. 조금 안전해졌다 싶으면 어디선가 문제거리가 발생하고 사건이 터져서 보는 사람의 염통을 꽤나 쫄깃하게 만든다. 

하지만 의외로 재주가 좋았던 영화. 거기까지다. 영화는 간만에 굉장해질 수 있었던 소재를 가지고 크리쳐물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삐끗한다. 명료한 설정이다. 

밑도 끝도 없이 세계가 대충 망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가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것은 뭐 요즘은 시적 허용같은 분위니까 오케이. 하지만 설정이 명료하질 않으니 오롯이 영화에 집중해야 될 관객의 머릿속에 자꾸 반론이 생긴다. 아니 왜 저 좆밥같은 크리쳐에 세상이 100일도 안되서 망한거야? 강가에선 그냥 소리내도 물소리에 묻혀서 안위험하다고? 그럼 강가에서 살면 되잖아? 크리쳐들 돌아다니는데 애새끼 낳아놓으면 무슨 수로 조용히 시키려고 임신까지 했대? 갑자기 지하실에 물은 왜 차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쳐는 도대체 뭐가 약점이길래 보청기만 켜면 빌빌거려?

내가 오타쿠새끼라 그냥 보면 될 걸 쓸데없이 츳코미질을 하고있는 것 같다고? 뭐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난 결국 저 의문점을 영화 내내 이해하지 못하고 구글검색을 켰다. 크리쳐물은 분명 미확인생물과 인간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메인디시인데 영화가 끝나고 관객의 머릿속에 남은 게 쟤들 대체 뭐 한거냐는 의문이다? 이건 망한거거든. 

보청기 부분은 특히 이해불가능한 게, 빛무위키에 적혀있는 대로 크리쳐가 쏜 음파를 보정해서 반사하기 때문에 귀가 예민한 크리쳐가 시끄러워하는 것이다? 아니 음파를 쏘는 형태의 크리쳐면 소리를 듣고 나타나는게 아니라 청각을 시각처럼 활용했어야지. 그럼 그냥 보청기가 증폭시킨 소리가 시끄러워서 빌빌거렸다? 세상 망하는동안 사람들 다 뭐했어? 고작 보청기 소리도 못따라갔다 이거야? 심지어 소리 좀 듣겠다고 열어놓은 귓구멍에 샷건 한방 박으니 골로 가버리는 개약체 크리쳐들을 데리고 뭐? 포-스-트-아포칼립스?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크리쳐중에 정말 무시무시하고 재밌었던 영화가 있었다. <불가사리>다. 코믹 활극에 크리쳐물이 더해진 이 영화의 크리쳐들은 땅 속을 기어다니는데, 지면으로 느껴지는 진동을 이용하여 목표물을 추적한다. 그리고 진짜 기깔나게 머리가 좋아서, 처음에는 단순히 지면에서 떨어져 간이구조물이나 자동차 위로 피하면 추격을 멈췄지만, 이후 먹잇감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구조물을 흔들어 떨어뜨리거나 자동차 밑에 구멍을 파 전복시켜버린다. 결국 점점 안전지대가 줄어들고, 완전히 안전해지려면 크리쳐들이 절대로 범접할 수 없게 바위 위 같은 곳으로 피신해야 되는데, 사람이 영원히 바위 위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어떻게든 크리쳐를 죽이거나 따돌려야 되는 상황에서 그 긴장감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굳이 왜 다른 영화를 끌어와서 관심도 없는 스토리를 줄줄이 나불대느냐, <불가사리>와 이 영화의 극적인 차이 때문이다. 바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라는 것.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패착이자,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자, 단 하나의 오점은 바로 배경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사실이다. <불가사리>처럼, 영화가 그냥 '어느 외진 마을에~'로 시작하면 모든 게 명료해질 수 있었다. 그 마을을 제외한 세상은 잘 돌아가는 중이니 임신한 것도 이상할 게 없고, 사실 단순하고 약해빠져서 세계멸망과는 거리가 좀 먼 크리쳐의 능력치도 미확인 생물체의 외딴 마을 습격으로 스케일을 줄인다면 충분히 무시무시해진다. 큰 소리를 들어봤을만한 전적이 없으니 보청기공포증이 약점이라는 사실도 이해해줄 수 있고, 갑자기 지하실에 물이 차는 장면은 뭐 하수도관이 터졌다고 하지 뭐.

정리하자면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린 영화. 영화의 컨셉은 완전 본격 크리쳐물인데, 설정은 모호하게 대충 때우고 가족드라마나 찍고 있으면 어떡해. 왠지 근래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하는 말 같지만, 크리쳐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크리쳐에게 그에 맞는 배역을 주도록 하자.










2018년 11월 9일 금요일

탐정이 아니라 음양사인 이유 - <우부메의 여름> (1994년작, 교고쿠 나쓰히코 저)


우부메는 여름에 자신의 아이를 맡기러 온다는 일본의 요괴이다. 그리고 어느 여름, 작중의 인물들은 20개월간 임신중인 한 여자의 사연을 취재하려다 괴기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고, 음양사 추젠지 아키히코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 <무당거미의 이치>등 이 사람 작품을 몇 권 읽으면서 느끼지만, <망량의 상자>를 제외하면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좀 너무 작위적이다. <우부메의 여름>에서도 온갖 방법으로 인격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기본이요, 단체 환각상태나 최면까지 현실적임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편.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 '탐정'이 아니라 '음양사'라는 설정을 빛내는지도 모르겠다. 어둡고, 괴기스럽고, 비현실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전후 일본이라는 배경과 오컬트적인 전개 및 장광설들에 아주 잘 녹아들어서 이 작가만의 특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필독의 가치가 있다.

책에 대해 평가하자면, 억지스럽지만 <광골의 꿈>처럼 사건의 인과관계에 억지가 가득한 게 아니고, 책의 분위기상 이해해줄 만큼의 오컬트성을 잘 배치한 수작.


책<동서기담>에서의 우부메 삽화

2018년 11월 8일 목요일

기묘하지만 새로울 건 없는 - <겟 아웃> (2017년작, 조던 필 감독/ 대니얼 칼루아, 앨리슨 윌리엄스 주연)


일단 포스터에 쓰여진 캐치프레이즈는 확실히 과장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깔끔한 연출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력이 어우러진 수작 공포물.

사실 이야기의 전개는 과히 작위적인 편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자실상 직유에 가까운 은유들이 엄청나게 튀어나오지만 전부 맥거핀이다. 심지어 후반부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은 초반부 인종차별적인 분위기와 완벽하게 모순되기까지 한다. 뭐지? 이게 패륜인가 하는 그건가. 

그러니 스토리를 보지 말고, 영화의 기묘함을 느끼며 즐기도록 하자. 이쁜 백인 여친 본가에 놀러간 흑인 남친이 겪는 기괴한 이야기, 꼭 분위기를 깨고 소름끼치게, 혹은 기분나쁘게 만드는 캐릭터와 대사들. <환상특급>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영화, 티비프로에서 몇 번씩 사용된 형태와 분위기지만 요즘 한동안 이런 영화가 없었다 보니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2018년 11월 6일 화요일

감성 미스터리는 개뿔이 씨1발 - <퍼펙트 블루> (1989년작, 미야베 미유키 저)


개똥같은 소설의 특성 - 한 페이지를 할애해서 작중 등장인물 이름과 설명 나열해놓음.

언젠가의 포스팅에 이런 글을 올렸었다. 소설 내에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특징조차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자신이 없는 개망작들만이 이런 짓을 하는거라고. 겪을수록 맞는 말 같다.

심지어 책 소개란에는 '감성 미스터리'라는 해괴하고 불안한 캐치프레이즈가 적혀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냥 '감성'이라고만 써놨으면 안빌리고 말았는데 왜 여기에 되도않는 장르를 갖다붙이냔 말이야. 낚였잖아 씨발거;

1인칭 화자인 탐정견, 그의 주인인 탐정사무소 사람들, 사실상 주인공인 피해자 동생, 쩌리지만 여튼 주요인물들인 피해자 가족들, 제약회사 사람들. 1페이지에 이름과 특징이 딱 정리되어 소개된 이 모든 캐릭터들은 전부 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 사건은 주관 없이 흘러가며, 그러다 우연히 비극적인 사고가 터지고, 감---성 충만하신 우리 주인공들의 신파극을 하이라이트로 박으면 뭐 어쩌라고.

감성적인 면에서는 평가를 못하겠다. 이미 미스터리랑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점에서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으니까. 애초에 제대로 된 수사가 책의 3/4쯤에서야 시작되는데, 그것마저 유야무야 끝나는 이런 개같은 소설에 감히 미스터리라는 단어를 붙여?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아마 미야베 미유키 작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접한 것을 제외하면 <솔로몬의 위증>일본영화판과 <모방범> 정도일텐데, 생각해 보면 이 사람 작품은 다 이런 식이다. <솔로몬의 위증>에서는 학생재판으로 진실을 밝힌다더니 학생들 드라마에 온 힘을 다 쏟은 채로 재판퀄리티를 엿바꿔먹어버리고, <모방범>은 납치범과 피해자 가족의 심리전에서 갑자기 납치범의 시점으로 넘어가더니 냅다 신파극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총 2권 완결인줄 알고 1,2권 빌려왔는데 3권 완결이었고, 빌어먹을 3권이 도서관에 갈 때마다 없어서 진짜 엿같았는데, 미야베 미유키 작품은 <모방범> 3권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빌리지 말아야겠다.

씨이발.




꽤 신선한 맛으로 돌아온 - <명탐정 코난 극장판: 제로의 집행인> (2018년작,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타카야마 미나미 등 CV)


코난의 팬들이 늙어감을 의식한 것일까, 상당히 무거운 톤의 영화가 나왔다. 코난 극장판이 무거워봐야 얼마나 무겁겠어 싶겠지만, 정말 생각 이상으로 무겁다. 아예 컨셉이 중량감이었는지 극장판마다 나오던 캐릭터들의 어설픈 연애행각도 전부 들어내고 작품 일체를 테러행각과 그 이면에 있는 정치적 갈등에 주목한다.

하지만 코난은 코난이다. 캐릭터들은 원작의 설정을 벗어날 수 없고, 팬들을 위한 활극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갑자기 코난이 잭 라이언마냥 무게를 잡고 존 그리샴의 소설처럼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덕분에 꽤 심도있게 다뤄볼만한 공권력 관련 주제는 조금 머리가 큰 어린아이가 가볍게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깊이로만 언급되고, 카체이싱 액션은 만화 특유의 과장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코난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강화신발 축구공은 무려 대기권을 뚫고 추락하는 위성의 캡슐을 막아내는 등 아동만화로서의 정체성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코난의 팬으로서, 이런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무엇보다 새로웠고, 추리물의 성격을 완전히 잃어 가던 극장판 시리즈에 스릴러의 활력이 돌아온 것도 기쁘다.

그러나, 아직 유지중인 아동만화로서의 면모와 정치스릴러가 원활하게 섞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코믹한 부분은 대놓고 웃으라고 기워넣은 느낌이고, 액션활극도 극의 분위기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된다. 그리고 극에 비해 너무 무거운 스토리를 진행하려다 보니 전달력이 떨어져서, 단서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따라가는 기분보다는 주인공이 해결하는 모습을 그저 구경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거슬린다. 이런 류의 스릴러는 마땅히 그 진범에 대한 떡밥이 극 내내 던져지며 관객들을 요리조리 유도해야 하는데, 이 영화의 진범은 '아 쟤가 진범이었어? 근데 누구더라?'정도로, 아무런 카타르시스도 유발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국내 등급은 '12세 이용가'다. 비록 범죄와 폭력을 담은 장면이 등장하지만 비현실적이고 수위가 낮으므로 12세 이상이면 관람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된댄다. 같은 등급의 비슷한 장르 영화를 따져보니 한창 잘나가던 시절 샤이아 라보프 주연 <이글아이>가 눈에 띈다. 요정도 수위도 12세면, 작정하고 좀 더 무겁고 거칠게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다음 극장판엔 괴도 키드가 나온다.
얘 나온 편은 싸그리 재미없던데 과연?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쓰레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