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목록

2018년 9월 28일 금요일

무엇에서 만족하라는 것인지? - <엠파이어 워리어 TD> (????년작, zitgastudio)


킹덤러시 파쿠리 게임. 이쪽 계열의 원작 혹은 대표작쯤 될 킹덤러시를 포함해서, 이런 류의 디펜스 게임은 뭔가 타격감이 부족하다. 좁쌀만한 투사체가 톡톡 날아다니는걸 보고있자면 한숨이 나올 정도. 그렇다고 레벨디자인이 끝내주게 잘 되어있냐면 파쿠리겜답게 그것도 아니다.

디펜스 게임을 하고싶다면 스팀에서 무료로 풀려있는 <던전 디펜더즈2>를 해보는건 어떨까.




야레야레. 이 정도 게임성으로는 나를 '만족' 시킬 수 없다구-?

2018년 9월 23일 일요일

좋은 장광설, 나쁜 결말 - <광골의 꿈> (1995년작, 교고쿠 나츠히코 저)


교고쿠도 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시미즈 아키가 그린 <망량의 상자> 코믹스판이었다. 굉장히 고풍스러우면서 독특한 전개와 결말이 인상깊었기에 언젠가는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광골의 꿈>은 말하자면 너무 멀리 갔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은 소설을 다 읽을때까지도 전부 외우기 힘들며, 관계없어보이는 여러 사건을 묶는 방식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 덕분에 끈적하게 잡아놓은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결말부에서 완전히 개박살난다.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살인사건은, 존재할 수는 있을지언정 소설의 소재로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결국 교고쿠도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만 남았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장광설의 용도다. 소설은 영화나 만화처럼 그래픽적인 요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삽화...는 논외로 생각하자. 그렇다면 소설의 분위기, 색감을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나는 소설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광설이 미장센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스릴러물은 대개 장광설이 없다. 마치 영화의 각본처럼 정확히 필요한 부분만을 편집하여 전달한다. 결과물은 빠르게 읽힐지언정 뭔가 하나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간만에 장광설이 빼곡히 들어찬 이미지파 소설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장광설이 소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러면 지금 당장 <백경>의 첫 장을 펼쳐, 바다에 관한 장광설을 죽 읽어보자. 그것을 읽고 난 당신은 이미 바다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모험에 굶주린 항구의 남자가 되어있을 테니까. 

'묘사'와는 다르다. 아무리 정밀하게 묘사해도 글로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일이다. 장광설은 묘사하지 않는다. 독자가 스스로 이미지를 그려내도록 유도한다. <백경>의 첫 장을 읽고 독자들이 그려낸 항구의 이미지는 전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 떠올린 미장센에서 유도되는 결과는 같은 것이다. 

<광골의 꿈>은 분명 별로인 소설이었지만, 나는 그 미장센 하나를 보고 다음 시리즈를 빌려왔다. 


2018년 9월 22일 토요일

<어 다크 룸>은 모바일로도 구동됩니다 - <다크 드래곤> (????년작, 스펀지모바일)


소년은 다크 아일랜드에 표류했다.
작은 오두막을 만들고 불을 지핀다.
이 섬에서 홀로 살아갈 순 없을 것이다.
오두막을 더 짓고, 방랑객들을 모아야겠다.

준비는 완벽하다.
오두막과 덫의 수를 한도까지 늘렸다.
보존식을 들고 마을 밖으로 나섰다.

착각이었다.
모피를 주고 아직 구할 수 없는 철을 최대한으로 확보하여 철제 수레를 만들었음에도 운반할 수 있는 보존식과 물의 양은 턱없이 적다.
한없이 넓은 마을 밖 필드에서, 몇 걸음 걷다가 보존식량이 떨어지는 시점에 맞춰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수레보다 용량이 큰 강철 수레를 만들고 싶지만, 철 광산도 찾지 못한 시점에서 강철 광산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방에서 부패한 도마뱀 배설물의 냄새가 난다.
'다크 드래곤'을(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다크 드래곤'이(가) 삭제되었습니다.

간만의 텍스트 게임었지만 똥겜이었다. 같은 폰겜으로 <던전 서바이버>라는 게임도 있었는데, 이게 본 게임보다 나은 편. 아니 정당한 때가 되면 해당 광물 광산이라도 나와줘야 자원활용플랜을 짜보고 말고 할거아냐. 결국 상점에서 하위자원을 주고 상위자원을 사거나, 현질을 하거나 양자택일을 해야되는데 전자는 엄청나게 오래 걸리고 후자는 엿이나 먹으시고.
(참고로, <던전 서바이버>는 자원 면에서 좀 널널한 대신 스테이지별 레벨널뛰기가 심해서 4~5스테이지만 되도 현질 없인 진행 자체가 안되는 수준이다.)

상술한 두 게임 모두 PC게임인 <어 다크 룸> 파쿠리겜인데, <어 다크 룸>은 과금요소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순수 인터넷 게임이다. 덕분에 노가다도 수월하고 레벨디자인도 깔끔하니, 텍스트겜 취향이라면 이 게임만 해보도록 하고 다른 놈들은 손대지 말자. 기분만 나빠진다.




너무 똥겜인 나머지 스크린샷을 깜박하고 삭제해버렸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타 블로그의 짤을 퍼왔다. 출처는 사진 내 표기.

그냥 하지 마.




2018년 9월 20일 목요일

마지막의 끝에서 무너져버린 범인의 품격 -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2017년작, 나카야마 시치리 저)


압도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방식 덕에 그 어떤 매체에서도 정상인의 범행이라고 생각치 않을 정도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쫓아도 피해자들 사이에서 더욱 기괴한 공통점만 발견될 뿐 정작 수사의 진행은 지지부진한 상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시(市)의 주민들은 결국 '개구리 남자'로 이름지어진 이 살인마에 대한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폭도로 돌변한다. 

굉장히 자극적인 전개가 빠르게 이어지기에 몰입감이 엄청나다. 사건 진행 중 꼭 여자랑 얽혀서는, 그 개인적인 관계 덕분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다는 하드보일드 형사물의 정석을 정말 잘 요리해놨다. 

하지만 문제는 결말부. 온갖 패닉사태를 터뜨린 희대의 살인극에 지극히 사적이고 명료한 목적의식이 있었음이 밝혀질 때, 소설은 완전히 그 힘을 잃어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느낌이다. <나이트메어>를 본다 치자. 프레디가 온갖 기발한 방법들로 엘름 가의 아이들을 찢어발기고, 관객과 극중 등장인물들은 그 잔혹성과 비현실성에 압도당한다. 근데 알고보니 지능범의 짓이라, 프레디의 소행인 것처럼 일을 꾸미고는 자신의 진정한 동기를 프레디 괴담 뒤로 숨긴 것이다. 물론 말은 된다. 근데 이렇게 되면 저질러놓은 짓들이 쌓아올린 공포감이 팍 식어버리거든. 

이런 류의 스토리가 끝까지 품위를 지키려면 진범의 카리스마가 엄청나야 한다. 대표적으로 <세븐>의 케빈 스페이시. 반전의 반전의 반전 끝에 정체가 드러나니 비열한 웃음이나 흘리면서 자뻑하는 흑막의 시대는, 꽤 예전에 지나갔다. 

야레야레, 결국은 나에게 도달해버린 것인가-
상으로, 내 장대한 계획을 설명해주마-

좋아, 이렇게 되면 나의 패배인 것 같군...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라.

「事必歸正」, 모든 일은 결국 바르게 돌아간다는 것을-

니미.



엄마와 여동생을 따먹기 전에 해야될 게 왜 이리 많아 - <'Life is good'> (동인게임)


영미권에서 나온 유니티 기반 동인 야겜.

맨 왼쪽은 여동생, 맨 오른쪽은 엄마, 중간은 부동산업자로 게임 첫 장면에만 등장하고 다시는 나오지 않는 아줌마.

쯔구르 야겜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인 '떡겜주제에 쓸데없이 길이나 헤매게 만들어서 종료하게 만드는' 일이 없는 비주얼노벨 형식이다.

스토리는 좀 뜬금없다. 저주받았다고 소문나서 가격이 떨어진 집으로 이사온 주인공 가족. 하지만 주인공에게 전에 없던 초능력이 발현하고, 주인공은 그 힘을 써서 엄마, 여동생, 옆집 모녀, 어쩌다 만난 군바리까지 건드리는 하렘왕이 된다. 그러나 이 힘은 사실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신기술이 유출된 것이었기에 CIA와 해커가 사건에 얽히는데...

모델링은 꼴릿하지만 떡신은 실망스럽고 근친물이라 진도도 시원하지 못하며 주요한 순간에 자꾸 떡씬을 끊고 스토리를 진행시키는게 참 되먹지 못한 게임이다.

'노잼'.




2018년 9월 19일 수요일

660원짜리 갈라테아 - <헨타이 걸> (2018년 스팀 출시, Loki Girlgame)


조각난 채 흐트러져 있는 야짤을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맞추는 게임.

갸냘픈 손, 어려보이는 얼굴, 그에 걸맞지 않은 풍만한 가슴, 매끈한 다리, 흘러내릴 듯한 골반의 조각들을 보며 이것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완성된 사진만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에로틱한 감각에 빠지게 된다.

아아- 피그말리온이 그의 갈라테아에게 느꼈던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나의 손으로 완성된 그녀는 단순히 그려져 있을 뿐인 다른 일러스트들보다 훨씬 아름답다. 생동감이 넘친다. 금방이라도 화면 너머로 손을 내밀어 나를 끌어안고 사랑의 말을 속삭여 줄 것 같은 기분이다-

정리하자면 별 거 없다는 이야기다. 660원에 심심풀이로 사서 즐겼는데, 15분간 퍼즐을 맞추면 3000개의 도전과제가 완료된다는 것 외엔 장점이 없는 게임. 개인적으로 도전과제에도 집착하는 편이 아니기에 그냥 돈만 날렸다.




배우의 캐리력 - <블러드 다이아몬드> (2006년작, 에드워드 즈윅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최소 수작~ 호평 입장에선 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

각본의 힘 보다는 배우들의 힘이 더 강했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디카프리오의 퉁명스러운 아프리카 백인 연기는 뭐 거의 완벽의 경지. 제니퍼 코넬리의 억척스러움과 다이몬 혼수의 바보같을 정도로 순박한 원주민 연기도 굉장했다.

다만 각본이 그들에게 부여한 캐릭터는 화려한 연기에 비해 좀 약하다. 디카프리오는 갑자기 개심해서 착한 놈이 될만한 감정적 충격을 어디에서 받았는지 불확실하고, 제니퍼 코넬리는 또 언제 디카프리오하고 끈적한 관계가 된 건지 애매하다. 다이몬 혼수는 극 내내 일정한 상징적 캐릭터니 논외.

연출도 내용에 비해 가벼운 편이다. 피범벅의 전개가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이 수없이 언급하는 아프리카의 비정함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 편. 공포스러워야 할 장면을 너무 가볍게 넘긴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느와르보다는 케이퍼 무비를 보는듯한 청량감.

불평을 조금 하긴 했지만, 상영시간 내내 재밌게 봤다. 피의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인들의 무거운 역사물 이런 걸 기대하진 말고, 광산에서 강제노역 중에 100캐럿 다이아를 발견한 흑인의 아프리카 탈출드라마 정도로 생각하면 실망 없이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앙 제니퍼 코넬리띠.

너무도 비싼 즐거움의 가격이여 - <악의> (1996년작, 히가시노 게이고)


간만의 장르문학. 책을 대여할 곳이 마땅치 않고, E-book 이라고 나온 것들을 읽으려면 컴퓨터 모니터로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봐야 하니, 결국 독서를 위해선 큰맘 먹고 책을 사야만 한다. 게다가 빌어먹을 도서정가제 덕분에 책의 가격도 어마어마하다. 아니다. 이쪽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하도록 하자.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90년대 스릴러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소설.

범인은 초반에 밝혀지고, 범인이 숨긴 동기를 찾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굉장한 포인트는, 범인이 드러나는 순간까지를 잘라내어도 한 편의 단편 추리소설로 볼 수 있을만큼 밀도가 높다는 것이다. 책 초반 범인과 형사의 짧은 공방만으로 독자들은 이들의 영리함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형사는 결코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으며, 범인은 의외의 부분에서 함정을 준비한다. 덕분에 수사의 진행은 매우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보이게 되며, 그것을 비트는 범인의 안배는 더더욱 드라마틱해진다.

다만 소설의 제목이자 범인이 그토록 숨기려 애썼던 동기인 '악의'의 정체는 다소 맥이 빠진다. 이런저런 사연이 겹쳐서 살인을 할 정도의 악의가 발현했다는 것인데, 나는 명료하지 못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피해자의 돈 혹은 명예를 갈취하고 싶었다는 내용이라면 더 좋았을 듯.

감상을 정리하자면 95%만족. 대단한 흡인력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추리물의 경우 발원지는 에드거 엘런 포로 대표되는 영미권이겠으나, 현재 그 본질을 가장 잘 이어받은 건 일본인 것 같다. 영미권은 분위기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인 나머지 정작 극을 이끌어 갈 스토리가 뒷전으로 밀린 느낌. 아니면 과도한 현실성에의 집착 때문에 플롯의 복잡화를 극단적으로 지양하는 중일지도.

앞으로도 가능하면 일본발 소설들을 위주로 장르문학을 탐독할 예정이다. 그러면 이제 다시 도서정가제의 이야기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이 개같은 놈들은 지금 취미로 독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책 가격을 저 모양으로 만들어놨을까. 소규모 서점을 살려? 애초에 정가구매 강요하면 누가 책을 산다고 정가제로 서점을 살리려 할까. 왜 강남에 집있는 놈들이라 정가로 팔아봐야 껌값인 책에 구매욕이 떨어지네 마네 하는게 전혀 이해가 안되나보지? 빌어먹을 돌대가리 새끼들.

14000원에 산 책을 3시간만에 주파하고 책장에 꽂을 땐 만감이 교차한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3시간에 14000이라니, 넷플릭스에 이 돈을 쓰면 몇 명이서 한 달동안 꼴리는 시간에 꼴리는 영화/드라마를 몇백 시간이던 꼴리는 만큼 볼 수 있고, 게임을 해도 세일기간에 지르면 S클래스 게임을 몇 개는 살 수 있다. 앞으로 영화는 영화관에서만 보십시오 하면 누가 영화를 계속 쳐보고 있겠나. 게임은 정가로만 사라고 하면 어떤 미친놈이 꾸역꾸역 그걸 계속 사겠나.

정가제가 최소 2020년까지 유지된다는데, 발안자 아가리에 엿을 박스째로 쑤셔박고 싶은 기분이다. 좆같아서라도 정가로는 안 산다. 주변의 헌 책방이나 뒤적여 봐야겠다.


2018년 9월 14일 금요일

여러가지로 고장난 타이머 - <잭 라이언 : 쉐도우 리크루트> (2013년작, 케네스 브레너 감독/ 크리스 파인,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


언젠가 잭 라이언 시리즈가 새로 나온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넷플릭스에서 추천작으로 띄워주기 전까지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영화. 왜 그랬나 했더니 북미에서도 한국에서도 처참하게 망했었댄다. 

영화는 대충 그럴 만 하다. 묵직해야 될 사건전개에 비해 지나치게 호흡이 빠르고 흔들리는 화면이 보는 이에게 짜증을 유발한다. 게다가 철지난 러시안 테러리스트 이야기라니. 난 그 내용을 보면서 작중 시간대가 냉전시대인가 한참을 고민하다 크리스 파인이 스마트폰을 쓰는 장면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여기에 지나친 미국뽕과 본 시리즈가 씹고 남은 배설물을 좀 섞으면 짜잔! <잭 라이언 : 쉐도우 리크루트>를 즐겁게 관람해 주십시오.

그나마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면 극중 잭 라이언이 타겟 건물에 제한시간을 두고 침투하던 씬. 초시계를 가진 케빈 코스트너와 침투하는 크리스 파인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데, 보통 이런 경우 케빈 코스트너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코스트너의 대사가, 크리스 파인의 장면에서는 파인의 대사가 나오기에 크리스 파인의 움직임과 초시계의 타이머가 완전히 별개인 느낌을 주게 된다. 이러면 제한시간이고 나발이고 흐르는 시간과 주인공의 움직임에 싱크로가 없으니 긴장감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초시계가 나오는 장면에서 침투중인 크리스 파인의 대사가 나오는 구간이 있다. 이러면 이제 관객들은 '아 시간이 얼마 남았고 어떤 식으로 흐르고 있는데 주인공은 무엇을 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이해하고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뭐 그래봤자 그저 그런 영화라, 쓸데없이 빠른 호흡의 편집과 정돈되지 않은 주인공의 행동별 타임라인이 모든 것을 망친다. 1~2분 남은 상황에서 주인공이 처리한 행동의 수를 보면 지 쪼대로 타이머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4차원 초능력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 막말로 1초를 남기고 잠깐 집에 들러서 느긋하게 샤워 후 맥주 한 캔 까고 마누라랑 시시덕거리다 현장으로 돌아오는 수준의 연출을 보여준다. 이래놓고 작전이 성공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터지길 바라면 그건 개쌍도둑놈이지. 누가 이딴 걸 보면서 시간에 몰입하고 긴장감을 느껴?

왜 이런 류의 영화들은 초시계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걸까? <미션 임파서블7>도 그랬었고.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초시계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포켓몬의 삶은 어디로 가고 없나 - <포켓몬스터 기라티나, 화이트2> (2008년작, 2012년작, 닌텐도)




난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던 세대다. 그 땐 지우 옆에 이슬이가 붙어있었다. 이슬이 시절 포켓몬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쳤고 디자인에 과함이 없었다. 동물원에조차 잘 가지 못해 백과사전으로 만족하던 어린 나에게 포켓몬 월드는 무엇보다도 잘 꾸며진 생태공원이었다.

그랬던 포켓몬들이 조잡해지기 시작한 게 언제였을까. 디지몬 이후였던 것 같다. 디지몬은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처럼 생긴 놈도 있다는 점에서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사고방식이 인간과 차별화되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괴상한 모습을 한 인간이면 보는 재미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인간 캐릭터조차도 무언가의 개성을 어필하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하는 법이거늘.

대체품으로서 (나한테만)완전히 실패한 디지몬 이후 게임으로 접한 포켓몬은 디지몬을 닮았다. 어쩌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게임으로 접해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듯했던 포켓몬들은 게임 속에서 단순히 레벨업과 개싸움의 도구일 뿐이었다. 그렇게 개성을 잃은 그들은 외모로만이라도 전작의 등장 개체들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온갖 해괴한 디자인을 다 달고 나온다.

난 포켓몬 자체에는 애정이 있다. 하지만 게임에는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다. 이 단순무식한 게임에서 내가 하는 것은 그 어떤 의미도 없는 텍스트를 읽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일과, 공략법이라곤 상성우위에 있는 포켓몬을 길러서 선빵 한 대에 승리하는 것 뿐인 헛고생 두 가지가 전부이다.

두 게임 전부 끝까지 플레이하지는 못했다. 새로이 등장한 포켓몬들을 보며 과거의 추억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정도. 조금이라도 레벨링이 필요해지거나 길이 난해해지면 금세 흥미가 떨어져 버린다. 뭘 보려고 뒷부분을 계속 플레이한단 말인가.

우울하다.



P.S. 그나저나 화이트2는 남캐가 여캐보다 절대적으로 귀엽지 않은가? 내 성정체성을 송두리쨰 뒤흔들어놓는 캐릭터디자인이라니. 남캐쨩 이름이 뭐니? 응 내가 지어줘야 한다고? 그럼 넌 오늘부터 암퇘지㉾란다.

(남캐)

(여캐)

















나에겐 너무 맑은 - <슬레이 더 스파이어> (2017년작, Mega Crit Games)


난 로그라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게임을 평가할 자격이 없을지도.

레벨디자인은 꽤 잘 되어있다. 최소한 첫 번째 클리어는 꽤 몰입해서 끝냈다. 클리어 시 새로운 카드가 해금되지만, 그것만을 바라고 몇 번씩 뺑뺑이를 돌면 금방 질려버리고 만다. 승천 모드라고 클리어할 때마다 난이도가 올라가는 모드가 있지만 끌리진 않는다.

단순히 게임의 레벨디자인만을 즐기기 위한 게임이라니, 너무 퓨어하잖아. 수청무대어라 했던가, 나는 너무 맑은 물에는 살 수 없는 물고기인가 보다.


2018년 9월 12일 수요일

역겨운 민족주의 편승 - <암살> (2015년작, 최동훈 감독/이정재, 하정우, 전지현 주연)


자기 만듦새가 개똥같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반일주의와 애국주의에 대놓고 편승하는 역겨운 영화. 내가 병신같은 영화를 한두번 본 게 아니라서 어지간한 영화엔 웃으며 넘어가는 편이지만, 민족정서에 묻어가면서 이따위로 꼼수를 부리는 쓰레기들을 보면 도저히 불쾌함을 참을 수가 없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장르부터 갈피를 못 잡는다. 친일파를 암살하려는 중에 배신자와 외부인이 개입하면서 일이 꼬여간다는 스토리는 전형적인 스릴러의 공식이다. 하지만 하정우와 오달수의 캐릭터가 뜬금없이 거기에 코미디를 끼얹고, 후반부의 총격액션 씬은 서부극에서나 나올법한 연출로 분위기를 깬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김없는 신파극.

캐릭터메이킹도 멍청하기 그지없다. 독립세력의 대장 격인 김구(김홍파 분)와 조승우는 굉장히 계산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를 준다. 특히 김구는 친일 쁘락치인 이정재를 앞에 놓고 총을 꺼내들며 으름장을 놓은 다음, 뒤에선 압박당한 이정재가 자기 연락책을 만나는 게 확인되면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조승우는 같은 독립군 소속(쁘락치지만)인 이정재에게, 그의 정체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혹시 쁘락치일지도 모른다며 거짓 정보를 줘서 일이 꼬이게 만든다. 이로서 묘사되는 독립군의 모습은 무엇인가? 지들끼리 신용하지도 못하고, 수틀리면 서로한테 총알구멍 들이대면서 쫄리면 뒤지라고 압박하는 그런 단체이지 않은가?

이렇게 '독립운동단체'를 '절대선'으로 영화가 규정하지 못한 만큼 이 세계관에 기초하여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캐릭터들은 더 설득력을 잃는다. 아아니 독립군에서 불러주다니!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이몸 바쳐 자살(에 가까운) 폭탄테러작전을 불사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는 최덕문의 대사가 나올 때쯤이면 독립운동가가 전체주의 극우세력으로 보일 정도. 그 외에도 히트맨인 하정우는 '아무나 돈만 내면 죽여주는' 캐릭터로 등장해서 전지현이 쁘락치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의뢰를 수락하질 않나, 사실 독립투사임을 알자마자 자기 모가지까지 내어주며 그녀를 지킨다. 독립이 선언되면서 척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리잔에 양주를 채워 건배하며 죽어간 투사들의 넋을 기리는 김구와 조승우의 모습, 독립 후 한참이 지나서도 김구의 수 년 전 명령에 따라 기계처럼 총을 쏴갈기는 전지현의 모습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만이자 모독이다. 이게 마피아지 씨발 어딜봐서 독립군이세요.

여기에 조잡한 스토리라인은 보너스. 사실 타겟이 어릴 때 헤어진 전지현의 쌍둥이 언니와 그 아버지라는 사실 덕에,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전지현을 죽이러 온 하정우가 이것 때문에 혼선을 겪고, 전지현은 자기 혈육을 죽이지 못해 번뇌하는 뭐 그런 상황이 나와야 하는데, 전혀! 오히려 전지현은 '친일파니까'라며 아무 망설임 없이 애비한테 총질을 해대고, 하정우는 결코 쌍둥이 둘을 헷갈리는 일이 없으며 오히려 이경영(전지현의 친일파 친부)이 지 딸내미가 바뀐 줄 모르고 일본군 장교와의 결혼식을 강행하면서 사건이 터진다.

마지막으로, 아마 과도한 반일주의적 장면들로 인한 논란을 회피하려 했는지 소수의 일본군 특정인을 제외하면 일본인이라고 잔혹하거나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없다. 그 마음만은 이해하겠는데, 이건 장르적으로 일본인이 나쁘게 묘사되지 않으면 안되는 영화잖아. 거 학교폭력물은 진짜 온세상 학생들이 다 냉혈한 깡패새끼들이라 그렇게 묘사하는가? 필요한 건 보여줘야지. 덕분에 독립운동가들의 정당성이 더 떨어진다. 야 저 마피아같은 새끼들이 독립운동 한답시고 거리에서 총질에 폭탄질에, 저게 테러리스트지 독립운동가야?

그럼에도 독립하는 한국과 심지어 법이 아닌 총으로 제거당하는 친일파를 보면서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원하는가? 왜? 그래서 이 영화가 역겹다는 거다. 저 개지랄을 보면서도 단순히 그들이 '독립운동가' 명패를 달고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에게 몰입할거라 생각하고, 친일파 새끼를 쏴죽인다는 이유로 결말에 환호할거라 생각하니까.

좆까 이 조센징 새끼들아.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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