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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4일 월요일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지금까진 이렇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네. 게임은 의외로 가치가 충만하다. 루프되는 시간 속 운명론적인 이야기가 잘 녹여져있는 게임. 몇몇 부분에서 설명이 모호하거나 연출이 삐끗하지만 저예산 작품임을 감안하면 단순히 양키용 jrpg추억뽕빨물이라고 평가하기엔 너무 좋은 작품이다. 

플랫포머, 리듬게임, 텍스트어드벤처 등 여러 장르가 섞여있는 건 호불호가 갈리던데, 개인적으로는 '호'. 중반의 레이튼 교수 식 진행은 원작보다도 즐겁게 플레이했다. 전반적으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주니 이번엔 뭐가 나올지 기대하는 맛도 있었고. 

야리코미도 훌륭하다. 특히 게임 속 카드게임은 내가 지금까지 봐온 야리코미 카드게임 중 최고. 궨트는 짜증나서 카드 꺼내는 npc들 싸그리 스킵했었는데 개떡같은거. 

요즘 할만한 jrpg도 없고, 신작이 나와도 근본없는 똥겜인 경우가 부지기순데 이런 게 있었다니. 한동안 여운에 젖어 있겠구나.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왜 그 따위로 나온 데스 오로롱.

(중간의 격투게임 파트)









2020년 4월 8일 수요일

정말 고양이처럼 - < 고양이의 보은 > (2003년작, 히로유키 모리타 감독/이케와키 치즈루 등 CV)


차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해준 주인공. 그 이후 묘하게 고양이들이 치덕대기 시작하는데...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들의 쓸데없이 격한 보은으로부터 도망치는 소소한 이야기.

길고양이에게 정을 줘 본 적이 있는가? 오늘 졸졸졸 따라오며 아양을 떨어도 뒤돌아서면 어느새 사라져있고, 뒤에 다시 만나면 날 기억도 못한다는 듯 무심히 지나가는.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인물들의 관계는 워낙 쿨해서 서로 싫어하기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나면 모두들 제 갈 길로 사라져버린다. 간만에 일말의 여운도 없이 담백했던 영화. 다 보고 나니 영화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도 잊어버리는 느낌이다. 길고양이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고 생각해야지. 필시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을 테니까. 이젠 떠오르지 않아도 그것은 좋은 영화다. 

(분명 재회했음에도 서로 모른다는 듯 지나쳐가는 고양이와 주인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좋다. 그런 담백함을 느껴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소소한 만큼 저예산의 티가 나는 동화들과 좀 무미건조한 성격의 캐릭터들은 담백함을 살리기 위해 제거된 조미료라고 생각하면 딱이지.)

2020년 4월 6일 월요일

흘러가듯 만나고 헤어지고 - < 마루 밑 아리에티 > (2010년작,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시다 미라이 등 CV)


언제부터였을까, 절대적이던 지브리의 작품에 묘한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브리는 점점 더 밋밋해지기 시작했고,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마루 밑 작은 주민들이 인간에게 들키고, 잠깐의 위험 끝에 떠나간다는 이야기. 주인공 소년은 소인들을 돕지만 과몰입하지 않고, 소인들도 끈적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담백하게 감사를 표한 뒤 떠나간다. 드라마틱하게 사건이 엮이지도 않고, 과하게 감정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이제 이 작품이 나오고 10년을 더 살았다. 당시의 활기가 나에겐 없다. 이제 조용히 있다 조용히 떠나가는 미덕을 안다. 그리고 그 잔잔함 속에 흐르는 멜랑콜리함을 읽을 수 있다. 

소년은 꽤나 차갑게 소인들을 멸종해가는 종족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리고 그런 운명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떠나간 소인들은 아마 그 뒤로 영영 사라져 버렸겠지.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나는 내 추억 속의 무언가를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눅눅했던 서재의 이리저리 찢긴 안락의자도, 누렇게 변색되어있던 책들 속 활자들도, 마치 존재할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향수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들이여, 안녕히. 붙잡고 싶던 이야기들도, 안녕히.

(조금 지나고 영화를 곱씹어 보면 사족인 부분이 없잖이 있었다. 굳이 여기에 생태계 파괴와 인종 관련 이슈를 끼워넣을 만한 장치들을 박아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과 아리에티의 대화에 '안녕'이상의 문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갈 이유가 있었을까? 덕분에 쓸데없이 해석의 여지만 많아지고, 이게 작품의 평가절하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안타까워라.)

2020년 4월 5일 일요일

애니메이션한테 기만당하는 날이 오는구나 -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2017년작,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호시노 겐 등 CV)


한창 마시던 중, 사람들 사이에서 내숭떨며 홀짝거리는 데 지쳐 교토의 술집 거리로 뛰쳐나가는 아가씨와 어떻게든 사랑을 고백하려 그녀의 뒤를 쫓는 평범한 남자. 

영화는 내가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전부 담고 있다. 무서울 것 없이 막 들이대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진탕 즐기고, 그러면서도 순수하며 반짝거리는, 이걸 뭐라고 하더라.. 청춘이라고 하던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라는 제목은 작중 클라이막스에 한 등장인물이 주인공 아가씨의 등을 떠밀며 하는 대사이다. 그렇게 인싸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훈훈한 결말을 보고 나면 가슴 속에 시커먼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그 타르덩어리같은 뭔가를 치우고 나면 거기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을 것이다. 

카게나시 기법이니 뭐니 영화기술적인 요소를 주절거릴 힘이 없다. 인생에서 단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아웃사이더로서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동시에 많이 울었다.

(대학 시절, 슬램덩크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며 내 학창시절의 덧없음에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그것들은 나의 부족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워주는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마찬가지다.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영화는 나에게 없던 가상의 여름을 채워넣어준다. 앞으로 더운 여름날 남들이 그들의 후텁지근하면서도 어딘가 상쾌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존재하지 않는 짧은 여름밤을 추억할 수 있겠지. 그만큼 좋은 영화다.)

2020년 3월 19일 목요일

과육보다 맛있는 껍데기란 - <테일즈 오브 베스페리아> (2008년작, 반다이 남코)


지나친 마도병기의 개발로 황폐화되는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한 주인공의 모험... 이라고 일축하기엔 난잡한 스토리라인과 꺼벙한 엔딩이 배를 산 너머 어딘가로 증발시켜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나 야리코미의 재미는 상당해서 기어코 엔딩을 보게 만드니 이것이 바로 개를 흔들어대는 꼬리요 과육보다 맛있는 껍데기 아니겠는가.

그래도 껍데기는 가라.

오프닝 좋아요. 듣고 가요.

마조히스틱한 자학의 즐거움 - < 샨테 해적의 저주 >(2014년작, 웨이포워드 테크놀러지)


쉽다쉽다하더니 실상 해보면 어렵다. 구간마다 죽으라고 기를 쓰고 깔아놓은 함정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 짧게짧게 잘려있는 구간들을 수십 번씩 죽어가며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기묘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이게 진짜 플랫포머의 맛이지. 난 맞는 것과 죽는 게 너무 좋아...! 헉헉 샨테쟝 안에 쌀게.

2019년 10월 14일 월요일

끝내주는 연기와 연출, 근데 스토리가 - <매그놀리아> (1999년작,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톰 크루즈 등 주연)


연애 강사, 죽어가는 부자와 그 와이프, 한때 퀴즈왕이었던 게이, 아버지에게 공부만 강제당하는 꼬맹이, 찐따 경찰관 등 몇 명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인 듯 진행되다 한 지점에서 얽히게 되는데...

제목에 적은 것처럼, 연기와 연출은 끝내주는데 스토리가 좀. 딱 잘라 말하자면 인물들의 드라마가 얽히는 부분이 생각보다 드라마틱하지 않다. 엔딩은 싸다 만 느낌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뭔가 구멍이 있는 인물을 피할 수 없는 어딘가에 세워놓고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찍는 것을 즐기는 모양이다. 절대 다른 씬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듯 답답한 앵글의 카메라가 인물이 불편해하는 모습을 집요하게 비춘다. 근데 난 그런거 불편해서 싫음. 

개구리비도 별 임팩트 없었다. 오히려 뜬금없어서 맥이 더 빠진 느낌.
<보이니치 호텔>이나 보러 가라구.

뭐가 그렇게 웃겨요 - <아이언 스카이2> (2019년작, 티모 부오렌솔라 감독/줄리아 다이앳지 주연)


나치가 남긴 달기지로 도망친 인류는 지구를 탈환하기 위해 역사적 유명인사들로 변장한 파충류 인간들과 한 판 붙지만 아이폰 신자들이 분위기를 흐리는데...

뭔 개소리야...?

듣자하니 서구권에서는 꽤 유명한 밈들을 모아다 잡탕으로 섞은 영화라고 한다. 내가 직장에서 뜬금없이 와! 부장님 샌즈 모르시는구나! 이런거 외쳐봐야 아무도 안 웃는 것처럼, 이 영화도 같이 웃을 수 있는 애들끼리나 재밌지 나한테는 영...

뭐가 그렇게 웃겨요

2019년 8월 8일 목요일

의외의 포커스 - <인투 더 와일드> (2007년작, 숀 펜 감독/ 에밀 허시 주연)

어느 날, 갓 대학을 졸업한 한 청년은 오로지 알래스카에 가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종적을 감춘다.

배운 사람이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우며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수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오만이라던가, 미친 천재라던가, 혹은 허무주의라던가. 개인적으로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에 빠져 세상을 등지는 청년을 기대하고 영화를 틀었다. 하지만 영화는 정 반대다.

세상을 등진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면, 당연히 장대한 자연 풍광이겠지. 하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런 풍광을 찍지 않는다. 영화는 와이드 샷 대신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관찰한다. 주인공의 모든 사연은 사람간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관계를 떠올리며 끝을 맺는다. 영화는 내내 단 한 번도 주인공의 일탈을 긍정하지 않으며, 그의 실패를 상당히 냉정하게 비춘다. 게다가 주인공은 다 내려놓고 떠난 사람 치고는 상당히 사교적으로 그려진다.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씩 감화하는 스토리는 염세와는 거리가 멀지.

내 기대를 벗어난 것과는 별개로 영화 내적인 문제도 있다. 주인공에 대한 스탠스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 중립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위에 적었듯 작중 단 한번도 부정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주인공이 알래스카에 갇힌 뒤 보이는 회의감은 글쎄, 나에게는 방향성을 정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보인다. 혹시 정말 모든 판단을 오롯이 관객에게 미루려 들었다면, 그것은 영화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행위가 아닐까?

난 사람이 정말 싫다. 그렇게 홀로 늙어가다 고통스러운 외로움에 마주친다면, 그건 완전히 나만의 업보요, 내가 겪어야만 하는 내 잘못의 대가일 것이다. 영화가 주인공의 목표를 설명하는 데 실패했듯, 나도 나를 설명하는 데에는 실패하겠지. 그래도 내 결말은 내 불같은 의지의 결과물이 아니기에, 후회에 찌든 마지막 숨을 뱉으면서도 무언가 원망할 거리 하나쯤은 남았으리라.

샤워, 잠, 출근.



2019년 7월 29일 월요일

세기말의 추억에 흠뻑 - <명탐정 코난 : 세기말의 마술사> (1999년작, 코다마 켄지 감독/ 타카야마 미나미 등 CV)


극장판 최초로 괴도 키드의 예고장이 도착, 경찰은 어련히 이번에도 키드를 막지 못하지만 유유히 날아 도망치던 키드를 누군가 저격하면서 사건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그 시절 코난은 재밌었다. 내가 아직 어렸을 시절. 온갖 밀레니엄 관련 해괴한 컨셉의 창작물들이 돌아다니던 때. 몸이 아프면 얌전히 앉아서 꿀물이나 타 먹으며 빌려놓은 코난을 읽으면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는데.

추억을 다시 꺼내서 보면 그 때와 다른 맛에 상처받기 일쑤지만, 이 작품은 아니다. 지금 봐도 최소한 지금의 극장판보단 훨씬 재밌다. 눈물이 날 정도의 감동도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건 틀딱 특유의 보수성이겠지. 푸키먼은 레드가 제일 재밌자너 ㄹㅇ으로.

이래저래 추억으로 보는 만화. 난 코난을 볼 때마다 울게 되는지라, 도저히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가 없네.

그 시절 게임잡지에 이런 거 많았다. 

HOT가 흥하던 시절. 난 그 때도 남돌엔 관심 없었지만, 이 영화가 대여점 유리벽면을 대문짝만하게 채우고 있었던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역시 게임잡지에서나 보던.

세기말 한국영화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것. 근데 나 다니던 학교에선 나름 유행했고, 짜장면 드립은 모르는 애가 없었는데. 이거 흥행작 아니냐?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시절의 하루를 한 번만 더 살아봤으면...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 <존 윅3> (2019년작,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키아누 리브스 주연)


전작에서 킬러의 룰을 어긴 존 윅은 전 세계의 모든 킬러들에게 쫓기는 몸이 되는데...

액션으로 도배된 영화. 이런 영화가 으레 그렇듯 스토리는 간단하고 명료... 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한 게 첫 번째 단점이다. 자기 손가락을 잘라 바쳐가면서 용서를 빌었다가 갑자기 표변해서 다시 킬러들과 척을 졌다가, 스토리가 액션을 지탱해주는 뼈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액션시퀀스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 정도로 소모되는 느낌.

키아누 리브스도 많이 늙었다. 총기 액션은 아직 어느 정도 소화해내는 듯 싶지만, 이번 작에서 새로 시도된 육탄전은 완전히 깨는 수준. 흔히 사용하는 컷쪼개기 방식의 액션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맞지 않을 것 같으니, 좀 둔탁하더라도 키아누 리브스의 동작을 더 쉽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위의 두 문제가 꽤 질이 나쁜데, 의외로 또 좋을 땐 좋다. 초반부 거인과의 시덥잖은 육탄액션이 지나가고 나면 괜찮은 슈팅액션이 나오고, 그러다 끝내주는 방탄복 킬러들과의 액션이 끝나면 다시 시덥잖은 육탄액션으로 회귀. 한 영화 내에서 작품성이 이렇게까지 등락을 반복하는 건 아마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한 영화. 하지만 난 전반적으로 좋았다고 본다.

극중 닌자 역을 맡은 마크 다카스코스. 추억의 액션배우 중 하나인데 몰라보게 늙었다.
대표적으로 <크라잉 프리맨>

원래는 또 추억의 챤바라물 주인공인 사나다 히로유키가 맡게 될 역할이었다고.
이 쪽이 더 좋았을 것 같은데말이지. 마크 다카스코스한텐 어울리던 개그요소가 이 사람한텐 안 어울릴 것 같고, 그 개그는 없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2019년 7월 20일 토요일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엔... - <더 포리너> (2017년작, 마틴 캠벨 감독/ 성룡,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


아일랜드 과격단체의 테러로 딸을 잃은 성룡, 과거 아일랜드 과격단체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평화주의자 노선으로 길을 바꾼 정치인 피어스 브로스넌, 그리고 영국의 고위인사들이 테러사건을 두고 얽혀 들어가는데...

의외로 1억 달러 이상, 제작비 3배 이상의 수익을 낸 성공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트라 동원조차 어려웠는지 그 흔한 기자회견 씬조차 요리조리 피해간다. 사건의 크기에 반해 등장하는 인물들이 워낙 적으니 영화가 전반적으로 허전하다. JCVD에서 장 클로드 반담의 대사가 떠오른다. "영화 제작비가 1000만 달러, 그 중 400만 달러를 내가 받으면 영화는 뭘로 찍나?"

성룡의 액션은 기대할 게 없다. 동양개봉판에는 후반부 액션을 재촬영해서 편집해놨다지만, 오히려 세월이 부각되어 가슴아플 뿐이다.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가 진중한 느와르라 성룡 식 액션은 어울리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고.

피어스 브로스넌은 일부러 목소리를 그렇게 냈는지 몰라도 입을 열 때마다 피눈물이 흐른다. 노인 특유의 쉭쉭거리는 쉰 목소리를 내는데, 일부러 그랬겠지. 아무튼 그랬겠지. 골든아이 시절의 브로스넌이 그립다. 정확힌 골든 아이 시절이 그리운걸까.

영화를 보며 미리 기대할 두 배우와 액션은 이렇게 별 볼 일 없었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는 오히려 괜찮은 편이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퇴물인 두 배우 얼굴만으로도 억 소리 나는 흥행작이 됐겠지만. 높지도, 그렇다고 아주 구리지도 않은 완성도와 추억 속 두 배우. 딱 그 정도의 영화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사실 두 배우 모두 봐줄만한 영화가 없었던 시간이 꽤 된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의 추억이여.


여담으로 영화 초반 폭탄테러로 사망하는 성룡의 딸은 그 옛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초 챙.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처음 봤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14년 전이다. 
앗 아아...


2019년 7월 13일 토요일

기름기 쫙 뺀 기름폭발사고 - <딥워터 호라이즌> (2016년작, 피터 버그 감독/ 마크 윌버그, 커트 러셀 주연)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 하지만 이런저런 부위에 이상이 많은 게 누가 봐도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현장이 원래 다 그렇듯 어지간한 하자는 임의조치로 넘겨버리는데, 과연 오늘도 잘 넘어갈 수 있을까.

흥행참패작이지만 출연진도 화려하고, 감독도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들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핸콕>이라던가 <배틀쉽>이라던가. 흥행여부와 관계없이 취향만 맞으면 일정 이상의 재미는 보장됐었고, 그것은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 일단 글을 시작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굉장히 재밌다.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을 바탕으로 엄청나게 빠른 진행과 시뻘건 불길로 가득 찬 화끈한 화면으로 가득하다. 석유시추선 재난영화에 대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기름기 쫙 뺀' 담백한 구성이 주는 청량감은 가히 엄청나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재미없다고 평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왜 망했을까'

난 영화가 쓸데없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게 <매트릭스>때부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이슈, 철학, 풍자, 뭐 그런 잡다한 것들. 한국은 특히 심해서 현실과 괴리된 영화는 어지간해선 흥행하질 못한다. 그래서 결국 현실풍자코미디와 현실풍자스릴러, 혹은 과거사 미화영화가 흥하는 거겠지. <신과 함께>는 SF 판타지 영화로서 굉장히 드문 성공케이스지만, 결국 SF적 요소,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신파에 기대어 성공한 감이 크니까.

<딥워터 호라이즌>은 그렇게 근래 영화들이 성공하기 위해 채택하는 그런 공식들이 결여되어 있다. 사건도 거의 각색되지 않은 상태로 재현되는데, 때문에 책임관계도 명확하고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순간도 딱히 없다. 그 누구도 영웅적으로 활약하지 못하며, 기적적인 일도 없고, 굳이 그런 순간을 포착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시추선은 당연하다는 듯 붕괴되고, 사람들은 각기 흩어져 죽거나 탈출하고, 생존자들은 구조된다. 엄청나게 빠른 편집 덕에 관객이 느끼기엔 뭔가가 휙휙 터지더니 스탭롤이 올라와버리는 느낌. 그 흔한 서양의 가족주의 신파조차 이 영화에선 최소화되어 있다.

차라리 더 예산을 줄이고 현실감을 살리는 영화를 찍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상업영화 특성상 그러기 힘들었겠지. <그래비티>같은 건 감독이 알폰소 쿠아론 급이라 가능했겠고. 결국 전세계 흥행 참패, 한국에서는 고작 10만 관객으로 그 <판도라>의 50분의 1수준밖에 못 했다는 게 참 아쉬운 영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매우 재밌다. <판도라>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영화는 조루일까 속사일까.

2019년 6월 29일 토요일

소재의 다양성만큼은 욕할 수 없지만 - <머더 미스터리> (2019년작, 카일 뉴어첵 감독/ 아담 샌들러,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


15년만에 어거지로 떠난 늦깎이 신혼여행. 일반석 비행기에 낑겨 아내와 남편 둘 다 불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우연히 말을 섞게 된 대부호의 아들이 순간의 변덕으로 자신의 가족 파티에 부부를 초대한다. 하지만 초대받은 파티는 잠깐의 정전과 함께 살인현장으로 돌변하는데...

사실 추리물이라는 건 한물 간 장르다. 만드는 노력에 비해 신선도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고, 현실성 부족이라고 온갖 혹평에 시달리기 일쑤이며, 애초에 이 모든 것을 신경쓰지 않고 양산형으로 만들어내려 해도 최소퀄리티의 기준이 너무 높다. 그래서 당연하지만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우리에겐 추리물의 추억이 있다. 방구석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와 셜록 홈즈를 읽던 시절부터, 온갖 일본 추리물, 코난과 김전일로 대표되는 추리만화, 거기에서 파생된 온갖 추리게임 등등등등. 사실 어릴 적 영화들은 추리물을 표방하는 일도 많았다. 2~30년 전엔 말이지. 이런 추억들 때문에라도, 나는 '추리영화'라는 타이틀 하나로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최소퀄리티 미달이다. 주인공 부부가 누명을 뒤집어쓰는 과정은 코미디로 얼버무려지고, 진범과 트릭은 작위적이기 짝이 없다. 마지막엔 뜬금없이 카체이싱 씬으로 넘어가는데, 최소한의 복선은 던졌다지만 글쎄. 굳이 필요했을까?

그래도 말이지, 지금 코난을 다시 읽어본 적이 있는가? 정말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다. 김전일을 다시 보았는가? 최소한의 드라마조차 성립시키지 못하는 각본의 수준에 추억이 개박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추천되는 추리소설들을 읽어 보면, 이런 상업영화와 별 차이 없는 각본이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더 이상 내 추억이 망가지는 게 두려워서, 감히 더 이상 들춰 볼 염두가 나지 않는다. 추리물이라는 것은 우리의 기억만큼 멋진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은, 난 영화에 그럭저럭 만족했다는 것. 말하고 싶은 부분에서 막히면 대충 코미디로 얼버무려버리는 것 같은 그런 영화지만, 나름 추리물의 클리셰적인 진행을 따라가준다는 면에서 추억뽕으로는 합격이다. 

저는 정말 '개돼지'입니다!

2019년 6월 24일 월요일

유쾌하지만 추친력이 부족해 - <에픽 배틀 판타지5> (2018년작, kupogames)


플래시 그래픽의 턴제 RPG게임. 보통 게임 소개는 스토리 요약으로 시작하는 편이지만, 이 게임엔 정말 스토리랄 게 없는 편이라 패스한다. 그렇다고 정말 스토리가 없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튀어나오긴 하는데 게임을 끌어가기엔 한없이 부족한 스토리라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게임의 최대 단점. 


1. 유머



스토리를 포기한 대신 게임은 유머와 야리코미로 플레이어를 잡는다. 하지만 시종일관 유쾌한 캐릭터들과는 별개로 유머의 타율이 좋지 않다는 것은 감점 포인트. 대표적으로 위의 두 짤을 보자. 저런 단발성 개그로 게임이 도배되어있다고 보면 된다.


2. 전투와 야리코미

2-1) 장비


캐릭터는 전투 중 한 번의 턴을 소비하여 장비를 교체할 수 있다. 각각의 상황마다 효율적인 장비가 정해져 있기에, 1턴을 공격/방어 없이 소비하는 것보다 장비를 바꾸는 행위의 효율이 더 높을 것이라 판단된다면 장비를 바꾸게 된다. 외에도 캐릭터가 한 턴에 2회의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버프, 혹은 확률적으로 해당 버프를 걸어주는 아이템 등이 존재하므로, 나름대로 요긴하게 쓰이는 메뉴. 하지만 무기의 설계는 아쉬운 것이, 단순히 상대와 상성 관계에 있는 무기를 선택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없다. 어? 상대가 전기공격에 약하네? 전기무기로 교체한다. 끗.

2-2) 스킬
  

버프와 공격, 힐 등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공격스킬은 앞서의 장비와 같이 상대와 상성관계에 있는 스킬을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마나가 소모되지 않는 대신 쿨타임이 존재한다는 것이 포인트. 강한 상성 공격스킬을 사용한 뒤엔 버프기를 사용하는 등의 턴 벌이가 필요할 것이다. 

2-3) 작전


 방어하기, 그냥 넘기기, 다른 캐릭터와 교환하기(*턴을 소모하지 않는다!) 도망치기(*아무 디스어드밴티지도 없다!), 적 스캐닝, 테이밍 등이 존재한다. 한 번 들이박아서 적의 특성을 파악한 뒤 도망치고 다시 붙는 것도 하나의 방법. 이게 처음엔 괜찮은 시스템인 듯 싶지만, 전투를 겪을수록 어차피 부딫혀보고 도망갔다 다시 붙을건데 그냥 첫 번재 스캐닝 정도는 턴소모 없이 하게 해주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음.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시스템임은 분명하다. 

2-4) 소환


테이밍한 몬스터는 전투에서 소환할 수 있다. 이런 활용이 상당히 재미있는 편. 소환된 몬스터는 자신의 스킬을 사용한 뒤 사라진다. 

적고 나니 지지부진한 리뷰가 됐다. 게임도 그렇다. 위에 적었듯 유쾌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들과 다채로운 전투, 야리코미들이 있지만 어느 순간 게임이 늘어져버린다. 그리고 나는 그 타이밍에 흥미를 잃고 엔딩을 보지 못했다. 엔딩까지 가는 길을 해금할때마다 팬아트 갤러리들이 열리던데, 정말 딱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 한 번 놀고 가라고 만들어놓은, 그정도의 게임인 것이다.

2019년 6월 14일 금요일

쥬토피아의 조상님 - <에이스 벤츄라> (1994년작, 톰 새디악 감독/ 짐 캐리 주연)


슈퍼볼 경기 직전, 한쪽 팀의 마스코트인 돌고래가 사라진다. 미신을 엄청나게 믿는 선수들의 사기가 걱정되는 상황, 팀에서는 애완동물 탐정인 에이스 벤츄라를 고용하는데...

펫 탐정이라지만 사실 동물의 비중은 낮다. 그냥 에이스 벤추라의 캐릭터성을 위한 소품 느낌. 영화는 오롯이 짐 캐리의 만화적인 연기에 기댄 물건이다. 그리고 그 미묘한 촌스러움은 지금 봐도 꽤 먹히는 편. 아니 꽤 먹히는게 아니고 '컬트적으로 먹힌다'라고 하면 알맞은 표현이려나...?

다만 사건의 전개는 좀 아쉽다. 코미디를 중점으로 두고도 충분히 더 흥미롭게 꼬을 수 있었을 것인데, 영화는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영화의 느낌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쥬토피아>의 조상'정도일까. 서양식 탐정 코미디의 수작. 지금 봐도 충분히 볼만하다. 추억 보정이 아니라 진짜로.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쓰레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