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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1일 월요일

목적이 없는 선택은 노잼인것을 왜 모를까. - <밴더스내치> (2018년작, 감독 불명/피온 화이트헤드 주연)


때는 1980년대, 처음으로 명령어 입력방식이 아닌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이 발매되기 시작하던 시절. 주인공은 소설을 원작으로 선택지 기반 어드벤처 게임을 구상하던 중, 자신의 인생도 누군가의 명령어 입력으로 구현되는 중이 아닌가 하는 근거 있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인터랙티브 무비라니. 어떻게 보면 정말로 넷플릭스 다운 발상이다. 어차피 극장개봉작 급의 고수익은 보장되지 않을 테니 장르의 다양화와 신선함으로 시장을 뚫겠다는 의지인가.

하지만 거기까지다. 인터렉티브 무비는 이미 60여년 전 시도되었던 장르이며, 한창 CD기반 게임기들이 득세하던 시절 무려 주류를 이루었었고, 현재도 영화가 아닌 게임업계에선 나름의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히트작도 꾸준히 나오는 중이다. 플랫폼이 스팀이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점만 제외하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 미장센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저예산인 만큼 미장센에 큰 공을 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전반적으로 전혀 80년대의 느낌을 주지 못하는 미장센. 주인공들이 다루고 있는 기기들을 제외하면 전부 현대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작중 설정년도와 화면의 위화감이 이렇게까지 심한 작품은 거의 처음이다. 뭐가 문제일까. 인물들의 패션? 모던한 건물들? 지나치게 세련된 장면들?

마지막은 안이함이다. 인터랙티브 무비의 매력은 선택지를 통해 관객이 직접적으로 영화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재미를 위해서는 각 선택지가 언제나 중요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 고민되는 선택지가 튀어나오고, 관객이 스스로 이 영화의 전개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이 부분은 개인에 따라 만족도가 다른데, 누군가는 직접 인물을 하나하나 조종하는 수준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선택지에 적당한 고민거리만 들어있다면 충분히 만족한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단순히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는 것이다. <밴더스내치>의 선택지는 무의미하다. 애초에 <밴더스내치>에서 벌어지는 사건 자체가 무의미하다. 주인공은 게임을 발매하는 도중에 그를 조종하는 모종의 존재에 대해 눈치채지만, 영화는 게임을 성공적으로 발매하는 것이 목적도 아니며, 모종의 존재를 파헤치는 것이 목적도 아니다. 목적이 없으니 의도를 가지고 선택지를 고민할 일도 없으며, 결국 관객과 극 내의 주인공들 모두가 들러리일 뿐이다. 와! 주인공이 내가 선택한 대로 움직였어! 이 사실 하나로 호평할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가? 안일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촌스럽다'와 '시대에 뒤떨어졌다'의 뉘앙스 차이를 생각해보자. <벤더스내치>는 촌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졌다'. 1980년을 배경으로 하는 게 아니라 1980년에 나왔어야 될 영화를 왜 지금 쳐만들고 있어 넷플릭스 돼지 새끼들아.


그럭저럭 재밌지만 스토리는 구려 - <테일즈 오브 심포니아> (2003년작, 반다이 남코)


세계는 성녀의 봉인으로 지켜지고 있고, 일정 주기마다 무녀가 그 봉인을 정비해주지 않으면 마수와 악당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번에도 무녀가 봉인의 여행을 출발해야 하는 시점, 하지만 무녀를 인도하는 천사는 수상하기 짝이 없고, 봉인에 대한 설명들은 모호할 뿐인데...

시작은 창대하지만 그 끝은 미미한 작품. JRPG 특유의 턴제 전투에서 벗어난 뛰어난 액션성과 끝내주는 레벨디자인, 각종 편의성 개선을 통한 몰입도 확보 등 게임의 기본 골조는 잘 잡혀있는 편이지만, 스토리의 진행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방금까지 서로 죽이려 들었던 놈들이 친구가 되고, 심지어 서로를 위해 죽어주는 뜬금없는 사태가 이어지며, 봉인에 대한 설정은 점점 모호해지다가 결국 제대로 된 설명을 포기해버린다. 흑막 겸 최종보스의 무능력함은 실소가 터지는 수준.

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그 시절 JRPG특유의 동화같은 감성 덕분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한 번쯤 플레이해볼만한 작품 정도는 된다.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재미없었다면 내가 55시간씩이나 들여서 엔딩을 보지는 않았겠지.

여담으로, 테일즈 시리즈 중 명-작으로 유명한 테일즈 오브 베스페리아가 스팀에 상륙할 예정이다. 타 사이트에서 확인했을 때 4~5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고전작품 이식작 치고는 너무 비싼 편이지만, 또 여름세일쯤 되면 팍팍 할인하지 않겠어? 아니면 킹블갓들 먼슬리에서 풀어주거나. 3만원 이하가 되면 당장 구매한다. 조금만 싸게 주세요. 댕댕꿀꿀.

이 게임 최고의 순간, 오프닝.

난 볼만하던데? - <사쿠라코 씨의 발 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2015년 방영, 카토 마코토 감독, 트로이카 제작)


뼈 수집가이자 표본사 사쿠라코와 고등학생 쇼타로는 기이하리만치 높은 확률로 시체를 만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쿠라코의 해부학 지식이 사건해결에 주요한 열쇠가 되는데...

간만에 TV애니메이션을 봤다. 1쿨 12화. 아마 미드 <본즈>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은 작품. 사쿠라코와 쇼타로라는 두 주요인물에 대한 설명이 과하게 부족한 것이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꽤 떨어뜨린다. 그 외에는 특출나지는 않으나 느낌은 있는 추리물.

일단 현재까지 나온 애니메이션의 에피소드들은 딱히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반전 혹은 플롯의 신선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쿠라코는 시체를 한 번 흝어보는 것 만으로 답을 맞춰버리기에 수사의 긴장감이나 박진감도 기대할 수 없다. 고로 작품은 전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게 되는데, 위에 말한 대로 캐릭터설명이 부실한 편이라서...

그래도 중박은 치는 클리셰 배열과 신비주의적인 컨셉의 조합은 특정 계층에게 상당히 어필할 만 할 지도 모른다. 일단, 최소한 한 편을 보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더 틀어보게 만드는 데엔 성공했으니, 2쿨은 좀 더 새롭고 공들인 퀄리티로 나와줬으면 좋겠네.

앙 본즈띠

눈물나게 즐거운 전체이용가 - <어 햇 인 타임> (2017년작, Gears for Breakfast)


우주를 순항하던 중 우주선의 연료가 되는 시간의 모래시계들을 한 행성에 흘려버린 모자걸. 이제 행성의 각 부위를 돌며 모래시계를 모아야 하는데...

엄청나게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단순하지만 정감 넘치는 스토리. 모든 진지함을 전부 내려놓고 가벼운 유머와 스트레스 없이 시원시원한 플랫포머로 무장한 그저 갓겜.

이미 플랫포머 짬밥이 꽤 되는 사람들은 난이도 면에서 심심함을 느끼는 듯하나, 진짜 하드코어한 게임 아니면 재미없다는 수준이 아닌 다음에야 딱히 신경쓸만한 거리는 아니라고 본다.

엔딩을 보며 플레이가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을 정도로 행복하게 플레이했다.

여담으로, 모든 스테이지의 목표가 명확히 제시되어 단 한순간도 길을 헤맬 이유가 없어 오롯이 눈 앞의 플랫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여 해당 구간을 넘길지에 집중하게 해 주는 게임의 친절함이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이렇게 명료한 게임이라니...


언젠가 갓-DLC가 나오면 다시 만나자...

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의외의 군상극 - <조작된 시간> (2004년작, 사쿠 다쓰키 저)


온갖 부정을 일삼아 부자가 된 사업가의 딸이 납치된다. 요구 금액은 1억엔. 하지만 경찰의 대처 미흡으로 딸은 살해당하고 만다. 이제 경찰은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하는데...

우선 굉장히 재밌는 작품임을 미리 알린다. 딸의 사망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사업가, 사건을 조작하는 경찰, 누명을 쓴 가짜 범인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몰입도가 놀라운 수준이다. 긴장감의 완급조절은 극 내내 완벽하며, 자칫 난해해질 수 있는 법정물임에도 사건의 진행이 굉장히 명료하게 전달된다.

다만 한 가지 내 기대를 완전히 엇나간 부분이 있었으니, 장르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법정 스릴러일 줄 알았다. 변호사와 검사가 증거를 제시함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진행되는 사건, 예상치 못한 결말 이런 것들. 하지만 <조작된 시간>은 사실상 법정이 무대일 뿐, '법정물'은 아니라도 봐도 무방하다. 등장인물 중 단 하나도 제대로 된 인간이 없고, 이들이 얽혀 결국은 파멸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느와르'인 것이다.

이 정도만 기억하고 작품을 읽으면 아마 나처럼 전혀 다른 것을 기대하다가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진 않겠지. 그리고 좀 더 온전하게 이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여담으로, 작품의 결말은 개인적으로는 사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라쇼몽>의 마지막, 뜬금없이 아이가 울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것과 같은 느낌이다.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당신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요 - <마비취> (1986년작, 왕정 감독/ 유덕화 주연)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의 다급한 전보를 받은 유덕화. 친구는 KGB에게 쫓기는 중이었고, 유덕화는 친구가 남긴 대형 비취휘석을 맡게 되는데 그 비취는 놀랍게도 살아 움직이는 보석이었다. 집요하게 보석을 쫓는 러시아의 악당을 피해 인터폴과 연계하는 유덕화, 이들의 여정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가끔씩 향수에 젖을 때가 있다. 눈을 감으면 며칠 전의 일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몇몇 순간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꺼내 보는 영화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몇 편쯤 있을 것이다. 나에겐 이 영화가 그렇다.

사실 영화적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어린아이와 교감하는 미지의 보석, 유치찬란한 대사를 뇌까리며 폼잡는 악당, 80년대식 슬랩스틱 코미디, 쌈마이한 세트장. 그렇지만 재밌다. 그 시절 '쾌남'의 이미지를 그대로 빼다 박은 젊은 유덕화, 전성기의 나부락, 리처드 노튼, 막소총, 진백상, 그들의 액션은 화려한 와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폭력적이기는 커녕 상쾌하다. <짱구는 못말려>에 전성기 홍콩 액션을 가미하면 이런 느낌일까?

점점 무겁고 진중해져만 가는 영화계에서 더 이상 '활극'이라는 단어를 찾기 힘들다. 헐리웃은 코미디와 액션을 번갈아 보여줄 뿐 두 가지를 병존시키는 법을 모르며, 중국은 홍콩반환 이후 마치 영화를 찍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 느낌이다. 악역과 선역 모두가 인간미를 잃지 않으면서 가벼운 액션 쇼를 보는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런 장르의 영화는, 그런 감성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오십원짜리 싸구려 아이스바의 맛,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잠시 그늘의 벤치에 앉아있었을 때 느껴지던 어린 시절 여름의 냄새, 풀벌레도, 유리벽 너머로 진열된 영화포스터들도, 조악한 낚시도구를 만들어 놀던 개울가의 물소리도, 그저 모든 것이 즐겁던 그 시절의 순수함이 사무치게 그립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시절 굳이 영화적 '나쁜 놈'을 만들어 죽이는 카타르시스에 의존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었기에 이런 영화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故 김기찬 作, '골목길')

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란포는 그냥 오타쿠 아니었을까? - <외딴 섬 악마> (1930년작, 에도가와 란포 저)


밀실살인으로 애인을 잃은 주인공. 탐정 친구에게 의뢰해보지만 얼마 후 친구 역시 살해당하고 만다. 그 때, 과거의 동성 연인이었던 자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해오는데...

나는 왜 작품에 대한 후기를 쓸 때 해당 작품의 출시년도에 집착하는가? 작품을 평가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란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 감화되어 미스터리 소설을 쓰게 되었고, 현재 일본에서 미스터리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대가'일까? 혹은 평범한 사람일까?

개인적인 의견은, 비록 내가 란포의 작품을 처음 읽어봤지만서도, 후자라고 생각한다. 오만가지 쌍욕을 다 들어쳐먹을 발언이지만 글쎄, 다분히 상업적인 이 작품의 문장 속에서 나는 딱히 대가의 면모를 찾을 수 없었다. 익숙한 수준의 기괴함과 적당한 트릭, 크게 놀라움 없는 드라마와 반전.

상업적으로 재미없는 소설인가? 그렇지는 않다. 문장은 흡인력이 있고, 자극적인 설정들은 독자의 흥미를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좋은 킬링타임용 소설이다.

란포는 '대가'인가?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출시년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같은 작품도 지금 보면 밋밋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르의 시초였다. 그런 작품이 지금에 와서도 훌륭한 킬링타임 역할을 해낸다면, 그건 장르물 중의 대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다.

1930년. 란포의 기괴함은 당시 독창적이었을까? 글쎄. 난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소설이 발간된 년도를 찾아봤고, 어쩐지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었다. 표현주의 영화를 아는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같은 것들. 어딘가 미쳐있는 인물들과, 일그러진 형태의 세트와, 창백한 분장과, 그 모든 것을 엮는 기괴한 스토리. 1차대전 패전국의 우울이 응집된 듯한 그 화면이 란포의 소설과 오버랩된 것이다. 일본이 영화상영을 시작한 것은 상영기가 발명된 지 단 1년 후부터였다. 보지 못 했을 리 없다. 란포의 세계는, 최소한 이 작품에서는 포의 소설과 표현주의 영화들을 전부 본 사람이 응당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내용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B무비를 보는 힙스터들이 그렇듯, 아마 란포도 일본 힙찔이 1세대쯤 되는 인물이었겠지. 그는 장르를 처음 들여왔고, 그래서 장르의 아버지였지만, 대가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에드거 앨런 포를 기대하고 란포의 소설을 집어들었지만, 아쉽게도 포는 한 명 뿐이었다.

뭐? 고작 1작품 읽어보고 뭔 말이 그렇게 많냐고? 팩트다. 다른 작품은 또 비범할지도 모르지.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여담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트릭이 있다. 특히 밀실 트릭이 그랬는데, 딱히 이해하려 들지 않고 넘어가도 큰 상관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런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다'라고 유세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실제 작품들의 이름을 소설 안에 늘어놓는 것은,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마이너스 요소인 것 같다. 특히 장르물에서 다른 장르물의 이름을 꺼내는 것은 뭐랄까, 자살행위? 안그래도 익숙한 요소를 더욱 익숙하게 만들고, 기껏 새롭게 변주해놓은 부분들의 신선함을 깎아먹는 느낌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2018년 12월 16일 일요일

취향만 맞으면 재밌을지도? - <후 엠 아이, Who am I? : The tales of Dorothy> (2018년 스팀 출시, 서울대학교 학생 모임)


도로시가 가진 4개의 인격이 소개되며 게임이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상담사로서 각각의 인격과 대화하여 본래 인격인 도로시와 타 인격들간의 통합도를 올려야 하는데...

굉장히 호평이 자자한 게임이다. 실제 다중인격자에 대한 상담을 참고했다는 말도 있고,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공감했다는 리뷰도 꽤 있는 편. 주도적으로 각 인격에 대한 대처법을 발견해가는 즐거움은 확실히 존재했다. 내가 선택지를 잘못 고름에 따라 도로시가 웃고, 울고, 심지어는 죽거나 죽이는데(...) 그 압박감이 이 게임의 포인트.

하지만 워낙 볼륨이 작은 게임이고, 할 수 있는거라곤 선택지고르기밖에 없는데 밝혀지는 도로시와 인격들의 사연도 딱히 새롭거나 자극적인 구석이 없는지라 한두 번 배드엔딩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공략집에 손이 가는 게 아쉬운 점이다. 볼륨이 10배정도만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좀 더 다채로운 이야기와 풍성한 선택지간 연계 및 캐릭터설정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혹은 상담이라는 주제를 살려 조금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다뤘으면 어땠을까. 다양한 인격을 기술적으로 분석해보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내 플레이타임은 스팀 기준 104분이다. 멍때린 시간 제외하면 한시간 반 정도 재미있게 즐긴 것 같다. 자극적인 요소도, 씹덕요소도 배제한, 굉장히 취향을 탈 것 같은 게임이니, 소개된 스토리만 가지고도 구미가 당긴다는 사람만 시도해보자.

나도 우울하다.

힙찔이들의 랩배틀 - <카우보이의 노래> (에단 코엔, 조엘 코엔 감독/ 제임스 프랭코, 리암 니슨 주연)


노래를 흥얼거리며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무법자 총잡이, 억세게 운 나쁜 은행털이범, 낭독극으로 돈을 벌지만 점차 수입이 줄어가는 방랑극단, 금광을 찾는 노인, 여행 중 유일한 친족을 잃은 여자, 각자의 사정을 안고 같은 마차에 올라탄 5명의 남녀. 이렇게 총 6개의 단편을 묶어놓은 영화.

넷플릭스 영화라는 점에서 일단 신뢰를 잃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등 상당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감독과 꽤 이름있는 배우들, 영화를 극찬하는 몇몇 사람들의 리뷰에 낚였다. 그리고 결과는 글쎄... 아주 나쁜 영화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하겠지만 또 덮어놓고 재밌다고도 못하겠는 그런 영화였다.

우선 6개의 단편들에 구심점이 없다. 캐릭터들이 겪는 기구한 사건사고를 엮지만 <씬 시티>만큼의 박력도 <기묘한 이야기>만큼의 기괴함도 없는, 다소 평이한 내용이 이어진다. 장르 역시 통일되지를 않는데, 컬트적인 첫 번째 이야기의 쌈마이한 분위기가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선 싹 실종되고 코미디로 돌아서더니, 그 다음 에피소드는 단순한 드라마. 개인적으로는 난잡하다고 생각한다.

씨네21의 기사를 보면, 코엔 형제도 메이저 배급사는 이 각본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채 바로 넷플릭스로 찾아갔다고 한다. 근본이 힙스터라는 것이다. 아마 나한테 이 영화가 재밌다고 떠들던 놈들도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이겠지.

얼추 상황을 알 것 같으니 정리하자면,
1. 쌈마이한 영화가 좋은가?
2. 영화를 보고 해석딸을 치는 게 좋은가?
3. 서부극 특유의 하드보일드함이 좋은가?

1,2,3 모두 YES라면 아마 이 영화에 맞는 힙찔이일 테니 한 번 보도록 하고, 나머진 권하지 않는다. 참고로 나는 2번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다. 난 명료한 영화가 좋아.



혹시 원시인들을 타겟으로 만든 영화입니까? -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 (2013년작, 코디 캐머런 감독/ 앤디 샘버그, 빌 헤이더 CV)



전작에서 맹물을 음식으로 바꾸는 기계를 만들었다가 음식 태풍을 일으켰던 주인공. 파괴했다고 생각되었던 기계가 사실 아직 기능하는 중이었고, 해당 기계를 노리는 유명 기업가가 주인공에게 감언이설로 접근하면서 사건이 다시 벌어진다. 점점 생태계를 잠식하는 음식괴물들과 기업가의 음모를 주인공은 막을 수 있을까.

성인으로서 공감하기 힘든 매우 원시적인 유머코드와, 작중 벌어지는 사건들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개연성도 없이 '애니메이션이니까'로 퉁치고 넘어가는 얄팍함. 전작에서 성숙했던 주인공이 무슨 포켓몬스터의 지우마냥 리셋당하고, 그 어떤 역할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소란스럽기만 한 조연들과 유치하고 공감불가능한 악역. 영화가 너무 조잡한 쓰레기라 뭐 하나를 굳이 잡고 비판하기엔 거기에 들어갈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무슨 생각으로 만든 영화인거야.

안 먹어요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소림사는 좀 병신같아야 재미있다 - <소림 36방> (1978년작, 유가량 감독/유가휘 주연)


청나라의 압제를 몰아내기 위해 학생신분으로 비밀문서의 전달 역을 맡던 유가휘. 하지만 꼬리를 밟혀 모든 동료와 일가족이 살해당하고, 도망친 유가휘은 이런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우선, 매니아층이 아닌 이상 지금 볼 만한 물건은 아니다. 허술한 편집점 덕분에 장면간 연결성이 거슬릴 만큼 떨어지고, 명작이라고 칭송받는 것에 비해 액션씬의 퀄리티는 글쎄? 동시대의 타 작품들에 비해 딱히 합이 뛰어나거나 구성이 대단하거나 한 게 없다. 복수심에 소림사에 들어갔지만 딱히 그에 관한 갈등은 나오지 않고, 그렇게 훈련받고 속세에서 복수를 행한다는 설정에 대해서도 일말의 고민이 없는 등 드라마적인 면도 상당히 부족하다. 널부러진 시체들 한가운데서 한 명은 적장의 시체에 복수의 칼빵을 쑤셔대며 피분수를 자아내고 유가휘는 나무아미타불을 연신 읊어대는 장면은 B급 컬트 호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지경.

하지만 우리가 언제 그딴 걸 신경쓰며 소림사물 영화를 보았는가. 무릇 이런 영화는 소림사의 골때리는 훈련법들만 잘 뽑혀주면 오케이인 것이다. 겨드랑이에 칼을 끼워서 팔을 못 접게 만든 다음 물통을 들어 옮긴다던가, 손목을 강화한답시고 3미터는 되보이는 대나무 장대 끝에 쇳덩어리를 달아놓은 공이를 들고 목탁소리에 맞춰 종을 때린다던가. 사상적 확신에 가득찬 스승이 제자를 개잡듯 족치다가 결국 둘 사이에 SM틱한 동질감이 싹트는 스토리는 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단 말이지.

어쩌면 현실도 마찬가지인 것 아닐까. 스승이 되면 주먹질을 하고 싶어지고 또 자길 개패듯 패는 놈한테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 인간 심층의식 속의 본능이라거나. 패는 놈은 아들같아서 패는거고, 쳐맞는 놈은 아버지같아서 쳐맞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 그냥 패는 놈이 아버지고 쳐맞는 놈이 아들인걸지도. 고든 램지 빨리는 것 좀 보라. 다 상대방 잘되라고 그러는거니 상관없다고? 도대체 인생 롤모델이 누구길래 그딴 말이 나와? 직쏘 살인마? 아만다트랩 한 번 씌워주면 감사하다고 8방향으로 광광 울며 무발기사정할 놈들일세;

여담으로 난 소림사물 중엔 <소림사 18동인>이 제일 재밌더라. 깡통맨들 때릴 때 타격음이 잊혀지질 않음.


참스승 인정합니다.

2018년 12월 13일 목요일

장르영화의 명맥을 위해 힘내줘 - <직쏘> ( 2017년작, 피터 스피어리그, 마이클 스피어리그 감독/토빈 벨 주연)


또 다시 시작된 직쏘의 살인게임. 전작을 봤다면 알겠지만 직쏘는 이미 암으로 죽었으니, 모방범의 짓이 분명하다. 이 모방범을 쫓는 형사들과 꼐임으로 죽어나가는 강제참가자들의 운명은..?

쏘우가 참 재미있는 컨셉이긴 했다. 덕분에 쏘우 이후에 만화던 영화던 장르불문 눈을 떠 보니 이상한 공간에 갇혀 있는 온갖 파쿠리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물론 <큐브>라던가 비슷한 영화들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쏘우가 이런 형식을 대유행시켰음에는 아마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무더기로 양산된 쏘우의 후속편들이 있었다.

미친 것 아닌가. 8편째라니. <쏘우>가 05년작이니 12년간 거의 연례행사 수준으로 나와서 벌어먹은 것이다. 심지어 이번 영화의 흥행수익도 1억달러 이상이라 하니 호러 프랜차이즈의 역사에 당당하게 한 획을 그었다고 봐야겠지?

라고 띄워주려 해도 사실 영화적으로는 호평하기 힘들다. 개연성은 밥말아 쳐먹은 지 오래고,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인 고문도구는 점차 참신함을 잃어가는 중이며 스토리는 참 짜내려고 애썼구나 정도의 느낌 뿐.

그래도 좋다.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가 하나쯤은 살아있어야 이쪽 장르영화들이 어떻게든 이어지지. 팬의 관점에서 보자면 막나가는 폭력성이 아직은 살아있고, 쓸데없는 드라마 없이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한 연출이 싫지만은 않다. 특히 마지막 뚝배기 씬은 오우야...

와!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헬레이져>!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온갖 프랜차이즈 이야기를 다 하고 싶었지만 괜히 글 늘어뜨리기 싫으니까 그냥 여기까지.

아 씨1발 디젤마인 - <몬무스 라비린스> (????년작, 디젤마인 개발)


마을의 어떤 유적에서, 다수의 탐험가들이 실종된다. 주인공은 그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유적에 들어가지만, 유적은 인간의 정액을 주식으로 삼는 몬무스 걸들의 환상낙원으로 통하는 문이었던 것. 주인공은 절륜한 섹스테크닉으로 그(의 정액)를 노리는 수많은 몬무스들을 보내버리며 유적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데-

내가 휴지끈이 짧아서 디젤마인이라는 개발사를 잘 알지 못했다. 여긴 LJN같은 곳이다. 진행되다 말아버리는 스토리, 안 꼴리는 캐릭터, 그 단순한 시츄에이션조차 몰입도를 망쳐놔서 오히려 어리둥절해지는 떡씬.

라이브 2D 캐릭터들과 풀보이스 교성소리가 아까운 졸작이다.

몬무스가 꼴리는 이유는 인간의 변태적인 섹스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그녀들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생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평가를 하고 싶었지만, 이 게임 캐릭터들은 코스프레를 한 인간 여자보다도 못한 그 무언가라서...

아직 카스미 괴롭히기만 봐도 벌떡벌떡 서는, 몽정기에서나 나올 법한 성욕덩어리들이라면, 최소한 편의성과 떡씬 퀄리티는 갖춰져 있으니 한 번쯤 해볼 만 할지도? 아, 참고로 항복을 누르고 떡씬으로 들어가도 자동진행이 아니라 하나씩 클릭해서 진행해줘야 되는 방식이니 다른 곳(?)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몬무퀘가 그리워질 따름.

게임을 끝내고 후기를 적는데 등골이 묘하게 서늘하다. 무슨 느낌일까. 후다닥 스팀을 켜서 구매목록을 확인한다. 왜 불길한 예감은 빗겨가질 않는가. 저번 스팀세일 후 재미삼아 잔고로 질러놓은 스팀 발 야겜의 정보란에 그 이름이 보이는 것이다-

개발사 '디젤마인'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레트로풍 설사똥 - <네트> (1995년작, 어윈 윙클러 감독/ 산드라 블록 주연)



자택근무로 일하는 보안프로그램 전문가 겸 해커 산드라 블록. 평소 거래처에서 특수한 물건을 확인해 달라며 플로피디스크 한 장을 보내오는데, 그 곳에는 특정 방화벽을 해킹하는 프로그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디스크를 노린 모종의 조직이 거래처의 연락책을 살해하고, 산드라 블록의 모든 개인정보를 해킹한 다음 암살을 시도하는데.

1993년, 개인적으로는 불세출의 걸작 <데몰리션 맨>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1994년 공인 걸작인 <스피드>로 월드스타에 입성한 산드라 블록을 단 1년만에 개쌈마이 액션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대충 소비해버린 영화.

일말의 긴장감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마추어가 찍은 듯한 영상과 개떡같은 음향은 오히려 관람을 방해하는 수준이고, 아직 짬밥이 없었을 무렵 산드라 블록의 연기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도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아마 캐릭터메이킹 자체가 안 되었던 부분일까? 아니, 그딴 걸 생각해서 무엇하겠는가. 물론 다른 주, 조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로 엉망진창.

간만의 초이스 실패였다. 요즘 영화를 많이 안 봐서 그런가, 고를 때마다 중박은 됐었는데 드디어 똥을 밟았구나 내가.

사실 이 영화를 고른 건 간만에 90년 초반의 레트로한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당시의 분위기엔 아마 매트릭스를 기점으로 세련되어지기 시작한 현재의 영화에 없는 어떤 투박함이 있다. 디지털 세대로 넘어가기 직전, 거친 색감, 쓸데없는 해킹만능주의, 브라운관 모니터, 유치찬란한 설정, 그럼에도 재미있는 극의 서사.

물론 그런 거 없고 발효된 똥냄새만 그윽하게 맡았다. 뭔가를 더 평가하고 싶지만 내 후각수용체가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한다. 오래 된 썩은 영화. 일평생 입으로 똥을 싼 노인의 틀니가 있다면 이런 냄새일 것이다.


물론 당신이 틀-딱이어도 이 영화는 보지 마십시오.

2018년 12월 11일 화요일

서부극의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 <실종> (2003년작, 론 하워드 감독/ 토미 리 존스, 케이트 블란챗 주연)


변두리에서 작은 목장주 겸 의사를 맡고 있는 케이트 블란챗. 어느 날 어린 시절 그녀를 버리고 인디언이 된다며 사라졌던 아버지가 찾아오고, 그녀의 애인이 살해당하며, 장녀가 납치당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어쨋든 인디언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납치범들을 쫓는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영화는 서부극이다. 인디언 문화와 백인 문화의 융합을 읽어내는 사람도 있던데, 난 거기까진 잘 모르겠고, 론 하워드 감독 답게 확실히 재미는 있다. 내재된 문학적 가치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서부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살려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깔끔하게 갖춰져 있는 영화. 1800년대 후반 서부의 황량함도, 추격의 스릴도 전부 살아있는 작품이다.

호평은 다 했고, 혹평할 거리는 굳이 없는 것 같으니, 가볍게 서부극의 가치에 대해서 적어보자. 영화에서의 결투는 4가지 단계로 나뉘어진다. 맨손 격투, 냉병기 격투, 서부극의 격투, 그리고 현대전의 격투이다. 뒤로 갈수록 인물보다 병기에 장면이 집중된다. 현대전까지 오면 인물은 단순히 폭발하고 조각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현대전에서 묘사되는 인물들은 보통 허무하다. 반대로 앞쪽의 것일수록 병기보다는 인물묘사가 메인이다. 맨손은 인물 그 자체가 싸우는 것이며, 냉병기도 인물의 움직임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서부극의 가치는 여기에서 나온다. 서부극은 처음으로 병기가 인물보다 강해지는 시점이다. 인물 간의 신체적 차이는 원시적인 총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물은 포커스를 잃지 않는다. 현대전의 허무함과 맨손, 냉병기의 날카로운 살의가 동시에 표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르라는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레이드>에서 세셉 아리프 라흐만과 조 타슬림이 서로의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건 일대일 격투에 들어갈 때 뿜어져 나오던 살의가 현대전에서 똑같이 표현된 적이 있는가? 전혀 아니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답은 간결하다. '한 화면 안에 죽이는 자와 죽는 자가 동시에 잡히는가'의 차이다.

서부극에서 등장하는 총의 사거리는 길지 않다. 그들은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를 조준하고, 한 화면 안에서 죽고 죽인다. 하지만 맨손, 냉병기 결투와 같은 원시적인 힘싸움은 더 이상 없다. 총구가 번쩍 하는 그 순간 한쪽이 피를 쏟으며 죽어버리는 것이다. 인물을 어떻게 배열하고, 어떻게 스토리를 이끌어서 방아쇠가 당겨지는 그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최대화하는 것이 바로 서부극의 미덕이자 가치가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본작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의 인물들은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하고, 느린 템포의 진행임에도 인상적인 폭력성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절정의 순간에 한 화면에 모여들어 관객들로 하여금 누가 죽고, 누가 죽이는지 완전히 이해시킨다. 서부극은 이게 기본이다. 그리고 기본만 잘 된 영화라면 그 이후에 문학적 가치가 있던 없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인 것이다.



마 니 서부극 무밧나 쏘는 놈과 맞는 놈이 같은 화면에 있



신규 쓰레기

노스텔지어, 그보다는 조금 더. - <에보랜드2>(2015년작, 시로게임즈)

모종의 미래기관에서 파견된 주인공, 하지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채 여주인공의 집에서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데... 양키들이 jrpg감성을 따라하면 똥겜이 나온다. 차별이네 뭐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회로 자체가 다른 게 맞다....

쓰레기들